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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어라, 프랑스 대사관이 우리 건축물 닮았네!”

등록 2006-03-08 21:12수정 2006-03-09 09:25

남성미가 돋보이는 프랑스대사관저엔 두터운 콘크리트 다리가 걸려있다. 월간 <건축문화> 제공.
남성미가 돋보이는 프랑스대사관저엔 두터운 콘크리트 다리가 걸려있다. 월간 <건축문화> 제공.
[도시와생활] 건축가 김중업씨 작품…한달 한번꼴로 개방

시민들이 외국 대사관을 드나들 기회는 많지 않다. 비자 때문에 갔다가 고압적인 분위기에 질려 불쾌한 기분으로 돌아나온 기억은 있겠으나 건물과 정원을 ‘구경’하러 가는 일은 매우 드물다. 대사관으로부터 초대장을 받는 이는 대한민국 사람의 0.01%에 불과할 것이므로.

서울 서대문구 합동 프랑스대사관은 이런 점에서 매우 이색적인 사례다. 프랑스대사관은 건축 분야에 관심있는 이들을 위주로 관람 신청을 받아 한달에 한번꼴로 문을 연다. 프랑스가 ‘문화적인’ 나라여서 그런가?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프랑스대사관 건물을 보고 싶어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대사관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김중업(1922~87). 그가 나이 마흔에 들어 완공한 이 건물은, 김중업이란 이름 석자를 널린 알린 출세작이었다. 철근·콘크리트라는 서양의 재료를 사용하되, 그의 스승이었던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제의 표현 기법과 한국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을 탁월하게 접목시켰던 것이다. 김중업은 이 작품으로 완공 직후인 62년엔 서울시문화상을, 65년엔 프랑스 국가공로훈장을 받았다.

지난 6일 오전 10시30분. 대사관 직원의 안내로, 다른 관람객 10여명과 함께 대사관 구경에 나섰다. 대사관 입구인 솟을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니, 가까운 언덕에 콘크리트 지붕을 머리에 인 건물 두 채가 눈에 들어왔다. 지붕을 받치는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는 위풍당당한 왼쪽 건물은 대사관저이고, 그보다 낮은 자리에 서서 끝을 살짝 접은 사각접시 모양의 지붕은 업무공간이다. 지붕을 몸체 바깥으로 돌출시켜 한옥 처마의 느낌을 살렸고, 높고 낮은 지형을 살려 건물을 맵시있게 배치했다. 두 건물을 잇고 있는 흰색 콘크리트 다리는 밀가루 튀김처럼 불룩해 부피감은 있어도 경쾌한 분위기다. 원하는 모양대로 콘크리트를 주무르며 순수한 조형미를 탐구했던 르 코르뷔제의 영향이 짙게 느껴진다.

이 두 건물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배치, 생김새의 차이 때문에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의 관계에 비유되기도 했다. 대사관저가 처마가 깊고 기둥이 힘차게 뻗어 있어 웅장한 느낌을 준다면(석가탑), 사무실은 날렵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는 것이다(다보탑).

그러나 실제로 이날 현장에서 본 모습은, 그동안 건축잡지 등에 실렸던 것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 4개의 기둥에 의지해 허공을 날렵하게 갈랐던 사무실 지붕은 12개 기둥 위에 놓인 평범한 지붕으로 바뀌었다. 건물들이 서 있던 언덕은 밑자락을 파낸 뒤 조경공사를 벌여 자연스러운 느낌이 사라졌다. 두 건물 뒤로는 고층건물이 삐죽 솟아올라 눈에 거슬렸다. 관람객 가운데 “천재이자 기인이었던 김중업 선생이 살아 있었다면 아마 이 모습을 보고 가만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개탄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비록 이리저리 변형된 모습일 망정, 40년 이상의 세월을 넘긴 명품건물을 만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우리 주변엔 소리없이 사라져가는 사연있는 건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관람을 원하는 이들은 미리 신청해야 한다. 어린이는 출입할 수 없다. (02)3149-4333.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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