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뒷마당 ‘새 청사’ 목소리 확산
서울시가 중구 태평로 본관 뒤쪽에 새 청사를 짓는 계획이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한겨레>3월29일치 13면). 청사 신축에 앞서 이곳에 놓여있던 부속건물들을 헐고 보니 훤히 트인 빈 터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이참에 4천여평 터에 22층 건물을 짓는 대신 공원으로 만들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돌려주자는 주장이 일고 있다. 그러나 업무공간이 부족해 새 청사 신축을 ‘반세기 숙원사업’으로 꼽아온 서울시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새 청사, 꼭 지어야 하나=서울시는 ‘비좁은 업무공간’을 신축의 첫번째 근거로 든다. 현재 시청 본관의 경우 공무원 1인당 사무면적은 평균 1.6평으로 행정자치부 권고 규정인 2.1평보다 매우 협소하다. 또 업무 공간이 태평로·서소문·충정로·남산 등지에 흩어져있어 본관까지 와서 결재를 받으려면 때에 따라 1시간 이상 걸리는 등 비효율이 심각하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80년대초부터 역대 시장들이 여의도·서초동·용산 등지로 시청 이전 방안을 꾸준히 모색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청 내부에서는 “새 청사 신축이 꼭 대안은 아니다”라는 의견도 나온다. 태평로 본관 인근의 건물을 사들이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새 청사를 짓더라도 서소문 별관은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사무실이 분산되기는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꼭 이 자리에 지어야 하나=서울시는 2288억원을 들여 지상 22층 또는 21층에 지하 4층 연면적 2만6635평 규모로 새 청사를 지을 계획이다. 그러나 새 청사는 길 건너 덕수궁을 바라보고 있다. 덕수궁은 문화재이기 때문에 당연히 ‘앙각 제한 규정’을 받는다. ‘앙각 제한 규정’이란 문화재 담장 높이에서 27°로 비스듬이 사선을 그었을 때 100m 경계선 안에 짓는 건물 높이는 이 사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신축 청사는 가장 낮은 쪽이 5층을 넘지 못하게 된다. 법을 따르려면 건물 디자인과 배치가 심한 제약을 받는다. 건축 전문가들은 “앙각제한 규정을 지킨다고 하더라도 문화재 근처의 삐죽 솟은 고층 건물들은 경관상 보기 좋지 않다”며 “시가 ‘법만 지키면 된다’며 고층 건물을 추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서울시, 왜 서두르나=민주노동당 김종철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10일 이명박 시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임기 말에 시청사 건립 테이프 컷팅은 안된다’고 건의했다. 김 후보는 “이미 시청 뒷마당은 ‘쌈지공원’이 돼 버렸다”며 “곧 임기가 끝날 이 시장이 테이프 컷팅만 하고 떠난다면 후임 시장이 공원화를 결정할 경우 이런저런 부담이 늘어난다”는 지적했다. 서울시는 그러나 오는 14일에 실시설계 적격자를 선정하고 다음달 중순께 실시설계자 계약을 맺어 11월께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가 무리하게 새 청사 건립을 추진할 경우 후임 시장은 심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새청사, 주변과 어울리나=서울시는 지난해 6~8월 ‘공모전’을 통해 새 청사 건축 설계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서울광장과의 연계성을 높이기 위해 긴 나선형의 램프를 설치하거나 원뿔형 모양의 랜드마크 빌딩을 짓는 등의 ‘참신한’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처럼 특이한 모양의 건물을 짓는 것에 대해 서울시 공무원 내부에서도 의문이 일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공무원은 “건물 설계안이 현실성이 없다는 의견이 많아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아이디어 공모전’ 수상 작품 7개 안이 그대로 설계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기본설계 적격 심의’를 벌이면서 ‘아이디어 공모전’ 수상 작품안을 반영할 경우 인센티브 점수를 주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조경·건축 비평가들은 “건물이 도심 주변과 어울리는 지의 문제는 단지 건물이 옆 건물과 잘 어울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북악산에서 광화문·숭례문·남산을 잇는 역사축·녹지축을 어떻게 보전하고 가꿀 것이냐의 문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유주현 조기원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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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건협’ 건축가들의 제안 “개발은 그만! 확 비워둡시다”
10일 서울시청 뒷마당에서 ‘새로운 건축사협의회’ 소속 건축사들이 시청사 증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권문성·김용미·김명규씨
“비웁시다. 열어 둡시다.”
‘새로운건축사협의회(이하 새건협)’ 소속 건축가들은 새 청사 건립 터를 그냥 놔두자고 했다. ‘새건협’은 건축사가 면허증을 지닌 기능인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몫을 다하는 전문가가 되자며 지난 2002년 만들어진 단체다.
“시민이 머물러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시청 앞 광장이 있지만 그 곳은 행사를 여는 곳, 목소리를 높이는 곳이지 쉴 공간은 아닙니다.”
이들은 시청 앞 광장은 떠들썩한 활력이 넘치는 앞마당으로, 뒤편은 숨을 고르는 뒷마당으로 연결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시청 뒷마당은 또한 서울을 ‘걷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 중요한 축이기도 하다. 북악산·경복궁·세종로 중심의 문화블록과 청계천·숭례문 으로 이어지는 보행로의 중심공간이기 때문이다. “보행로가 이어지려면 곳곳에 열린 공간이 있어야 해요. 북악산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보행로에 시청 뒷마당이 또 하나의 쉼표가 돼야지요.”
이참에 서울시청 뒷마당을 더 열고 더 비워두자고 했다. “나무는 더 많이 심고, 주차장은 지하로 밀어 넣어 쉴 공간을 더 만들면 어떨까요?”
이들은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사무실을 한 곳에 모아 고층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서울시 주장에 대해 고개를 흔들었다. 김용미 건축사는 “크다, 모여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개발중심적 사고”라며 “일상적인 업무는 온라인으로 처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시청 청사를 지금처럼 광장을 중심으로 반지모양으로 흐트러뜨려 놓고 필요할 때 사람들이 오가자고 했다. 서울시청사는 지금 을지로와 서소문에 별관을 두고 원형으로 흩어져 있다.
서울이 역사·문화 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도 뒷마당은 긴요하다. 덕수궁을 앞에 두고 등록문화재인 시청 본관을 옆에 두고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권문성 새건협 기획위원장은 “덕수궁을 빼고라도 20층이 넘는 새 건물이 뒷마당에 들어서면 시청 본관은 문화재로서 가치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서울 시청 증축이 의미 있는 문화적 이벤트의 장으로 거듭나기를 바랐다.
“월드컵 거리 응원을 계기로 시청 주변은 ‘서울의 중심’으로 시민들 가슴에 새겨졌어요.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잡은 ‘서울의 중심’에 고층 건물을 짓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글·사진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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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부터 ‘이전론’ 결국 제자리로 ‘새 청사 건립’ 결정하기까지
1926년 지금의 서울시청사의 전신인 경성부 청사가 완공되었을 때만 해도 서울은 조선시대 한양의 경계인 ‘사대문안’에 일본인들의 신시가지인 용산을 합한 정도였다. 이후 서울이 비약적으로 커지면서 시청 건물도 점차 규모가 커졌다. 여의도·강남 개발이 본격화된 1970년대 들어서부터는 시청사를 아예 새로운 곳에 옮겨 서울의 거점을 새로 짜는 방안도 논의됐다. 당시에는 여의도 중소기업협동조합전시장 터, 서초동 법조부지 등이 거론됐다.
95년 최병렬 당시 시장은 현재 자리인 태평로 터에 시청사를 새로 짓기로 결정했으나 착공은 후임 시장의 손에 맡긴 바 있다. 그 결과 첫 민선 시장인 조순 시장은 ‘신청사 건립추진위원회’를 꾸려 후보지를 물색하고 용산으로 최종 결정했다. 그러나 미군기지 이전이 불투명해지면서 용산 이전도 물건너가는듯 했다.
이명박 시장은 행정수도 이전이 한창 뜨겁게 논의되던 지난해 4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본관(시계가 붙어있는 광장 뒷 건물)을 남기고 20층짜리 새 청사를 짓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어 6~9월에는 ‘아이디어 공모전’이 열렸고, 올해 2~3월엔 부속 건물이 철거되는 등 새 청사 건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러나 새 건물을 지으려고 낡은 건물을 헐자, 빈 땅이 좋다는 반응이 쏟아지며 착공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복병을 만난 셈이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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