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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부슬부슬’ 장맛비엔 ‘지글지글’ 파전이 딱!

등록 2006-07-26 21:41

회기역서 5분 예닐곱집 옹기종기
출출한데 지갑얇은 대학생 북적
30여년 전통…맛도 인심도 푸짐
[도시와 생활] 동대문구 회기동 파전골목

후줄근한 장맛비가 한 달째 계속되고 있다. 입속을 얼려버릴 것 같은 차가운 맥주보다는 넉넉히 기름 두른 파전 한 조각이 그리워지는 때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파전골목’은 어떨까. 출출한 뱃속에 지갑 얇은 젊은이들에겐 안성맞춤인 곳.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경희대·서울시립대·한국외국어대 학생들은 물론, 광운대, 서울산업대 등 서울 동북부 지역의 학생들에겐 이미 명물이 된 거리다.

지하철 1호선 회기역에서 경희대학 병원쪽 출구로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파전 가게 예닐곱 개 옹기종기 붙어있다. 세상의 이름난 먹거리골목의 탄생이 그러하듯, 여기도 ‘원조’가 있다. ‘나그네 파전’의 공경자(71) 사장. 34살에 이곳에서 터를 잡은 것이 시작이었다. 속은 카스텔라처럼 부드럽고 겉은 바삭한 감칠맛을 내기 위해 몇 달 동안 시험개발 과정을 거쳐 가게문을 열었다고 했다.

이후 40여 년 가까이, 그는 밀가루와 기름과 더불어 평생을 살아왔다. 그가 소개한 ‘나그네 파전’의 원칙은 이렇다. 1)절대 밥을 먹고 오면 안 되고 2)양이 많다고 남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과연 이곳의 파전은 그 푸짐한 모습이 피자를 닮았는데, 해물 파전은 3cm가 넘는 두께에 새우·오징어·바지락이 입안 깊숙이 씹혔다.

파전이 지나온 세월만큼, 숨은 이야기도 많았다.

가게 초창기인 70년대엔 다들 가난하던 시절이라 파전 값으로 책가방, 주민등록증, 학생증으로 때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까 떼이는 돈도 많았을 터인데, 때가 되면 돈은 마음이 되어 찾아왔다. “하루는 어떤 중년 남자가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파전을 먹고 10만 원 수표를 내고 잔돈을 받지 않겠다는 거야. 이상해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전에 대학교 시절 이 집에서 미팅을 했는데 돈이 한 푼도 없었대. 아가씨들 보기 창피하고 돈은 내야겠고 그래서 학생증 하나 맡기고 그냥 갔는데 내가 그냥 받아 주더라는 거야. 바로 유학을 가서 돈을 못 갚았다고 미안하다며 수표를 내더라고.”

공 사장의 맛과 인심에 사람들이 꼬였고, 비슷한 가게들도 하나둘씩 이웃해 문을 열면서 지금의 ‘파전골목’이 이뤄진 것이다. 파전골목은 일단 ‘집합의 경제’에 성공한 듯 보인다.

저녁이 되면서 거리에 젊은이들이 우르르 모여든다. 간간이 부는 습한 바람에 고소한 기름 냄새가 거리에 진동한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취재 도움 광운대 신문방송학과(4) 강인해·구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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