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폭우로 서울 은평구 응암1동 영락중학교 축대가 무너진 뒤, 계속 내리는 장맛비 피해를 막기 위해 응급처방으로 흙더미 위에 비닐을 덮어놓았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흙더미 쏟아진지 열흘째
“축대위험” 항의 묵살하더니
학교·행정기관 ‘나몰라라’
“축대위험” 항의 묵살하더니
학교·행정기관 ‘나몰라라’
학교축대 무너져 집에서 쫓겨난 서울 응암동 주민들
장맛비가 이틀째 내리던 28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응암동 신진과학기술고등학교 체육관. 응암동 ㅅ·ㄷ빌라 주민 60여 명은 차창가를 서성거리며 퍼붓는 장대비에 한숨만 폭폭 쉬었다. 전날 120mm가 내려 호우 경보가 발령된데 이어 이날도 비가 그치지 않자 몇몇 주민들은 체육관에 있지 못하고 전날처럼 우산을 펴들었다. 집이 궁금해서였다. 흙더미에 갇힌 집은 여전했다. 주민들은 흙더미에 덮인 비닐을 타고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흙탕물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들은 지난 16일 이 체육관에 살림을 차렸다. 그날 새벽 서울·경기 일대에 150mm의 집중호우가 쏟아졌고 인근 영락 중학교 축대가 무너지며 나무·돌·흙더미가 축대 바로 아래의 주택가를 덮친 때문이다. 빌라 7채는 2층 집안까지 흙더미가 밀려들었다. 당시 잠을 자고 있던 박지성(39)씨는 “천둥 치는 소리가 나며 흙과 물이 쏟아졌다”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불 하나 뒤집어쓰고 집 밖으로 달려나왔다”고 말했다.
그렇게 뛰쳐나온 지 열흘이 넘었지만 이들은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학교 쪽에서 아무런 안전시설을 설치하지 않아 집에 들어찬 흙더미들을 한 줌도 꺼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가 붕괴 우려 때문에 70가구는 강제퇴거 명령이 내려진 상태여서 집에 들어가 머물 수도 없다.
‘이재민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남곤(38)씨는 “학교 쪽은 대화로 원만하게 해결하자며 하루 빨리 축대 안전 진단을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실제로는 열흘이 다 되도록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안전 진단부터 이뤄져야 집에 들어가 재산 피해 규모를 산정할 수 있을 텐데 지금으로서는 기약 없이 체육관에 머무는 꼴”이라고 말했다.
영락중학교가 체육관 신축 공사를 위해 축대를 세운 것은 2004년. 가파른 경사지 위에 자리잡은 학교는 빈 터를 만들기 위해 직벽에 가까운 옹벽을 쌓고 그 위에 체육관을 지었다. 그러나 공사를 벌일 때부터 축대 일부가 무너져 내리는 등 부실 논란이 일었던 축대는 2년도 안돼 무너져 내렸다. 주민들은 “축대를 쌓을 때부터 너무 위험해 보여 학교에 여러 번 찾아가 항의했지만 그대로 공사가 진행됐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쪽은 “16일 사고가 난 뒤 장맛비가 또 온다고 해서 일단 비닐로 덮는 응급조처를 취해놓았다”며 “비 그친 뒤 흙더미에 물이 빠지면 안전진단도 하고 안전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이처럼 학교쪽이 무작정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데도 앞장서 조율해줄 기관이 없자 주민들은 더욱 답답해 하고 있다. 은평구청은 “이재민들은 행정기관이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는데 학교 시설물에 대한 점검과 관리는 관할 교육청 소관이기 때문에 구청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서부교육청도 “교육청은 국·공립학교만 관리할 뿐 사립학교는 학교 자체가 관리, 점검하기 때문에 우리가 나설 수 없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이용주(서울대 정치학과 4) 인턴기자 edigna@hani.co.kr
이유주현 기자, 이용주(서울대 정치학과 4) 인턴기자 edign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