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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세월 간직한 먹자골목…‘추억’을 먹는다

등록 2006-08-02 21:14수정 2006-08-03 15:32

[도시와 생활] 소격동 정독도서관 앞 분식골목
정겨운 옛 한옥들 빼곡
“30분씩 줄서도 좋아요”
점심때면 문전마다 북적

서울의 옛 모습을 간직한 길을 꼽을 때 종로구 소격동 ‘정독도서관 앞 골목길’을 빼놓으면 서운해할 사람 많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풍문여고 옆 안동별궁의 돌담을 끼고 걸어 올라가면 작은 한옥들 사이로 아기자기한 골목들이 이어진다. 20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하는 이 골목의 또 다른 명물은 바로 분식집. 학생들은 물론이고, 아이와 함께 박물관·미술관에 다녀온 어머니, 출사 나온 사진 동호인, 손 꼭 잡은 연인들이 점심을 먹으러 모여든다. 점심시간이 되면 예닐곱 개 모여있는 이 동네 분식집은 앉을 곳 없어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기다랗게 이어진다.

“재밌잖아요, 기다리는 일도. 주변에 비싼 음식점도 있지만, 이 동네에 오면 분식 맛을 봐야죠.” 삼청공원 가는 길에 즉석떡볶이집 ‘먹쉬돈나’에 들른 지하나(21·서울 노원구) 씨는 “30분째 줄을 서 있지만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기다리는 것도 즐겁다”고 했다. 떡볶이집 옆 ‘호호분식’에 가보니 여고생들이 냉면과 김밥을 먹고 있었다. “보충수업 끝나고, 오후에 도서관 가는데 밥 먹으러 왔어요. 점심은 항상 이 근처에서 먹죠.” 조예지(18·풍문여고 3)양은 분식집이 비싸지도 않고 입맛에도 맞아서 친구들과 자주 온다고 덧붙였다.

이 곳의 분식집들은 자리잡은 지 10년 가까이 되는 곳들이 많다. 그만큼 기억나는 손님도 많다. 15년째 ‘호호분식’을 운영하는 김덕순(49)씨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정독도서관에서 입시 공부를 하던 학생이 있었어요. 운이 없었는지 4수까지 했는데, 매일 여기 와서 밥을 먹었지. 나중엔 정들었어요. 어느날 겨울에 왔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거에요. 드디어 대학 합격했다고 하면서, ‘아줌마 잘 있어요’하고 눈물을 흘리더라구요.”

8년째 즉석떡볶이집 ‘먹쉬돈나’를 열고 있는 김미정(50) 씨도 기억나는 손님이 있다. “항상 여자친구랑 같이 오시던 분이 있었어요. 근데 어느 날은 혼자 오셨기에 ‘왜 오늘은 혼자세요?’ 물어봤죠. ‘지금 집사람이 애를 가졌는데, 출산하기 전에 꼭 이 떡볶이를 먹어야겠다고 해서 싸가려고 왔어요.’ 나중에 두 분이 아기 안고 찾아와 인사하더라고요.”

8년 된 분식집 ‘라면 땡기는 날’의 경춘자(64) 씨는 이곳 가게들의 의미는 단순한 맛집 이상이라고 말한다. “학창시절에 공부하다 오고, 도서관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들르니 특별한 의미가 있지요. 어릴 때 열심히 공부한 기억, 노력을 다했던 모습, 그 젊은 시절의 추억이 담긴 곳 아니겠어요? 그 때 밥 먹던 곳을 또 잊지 못해 찾아오는 거고.”

제아무리 번화하고 세련된 거리도 세월의 향기만큼 진한 매력을 풍기는 것은 힘들다. 그래서 이 골목을 찾는 발걸음은 계속 이어진다. 시간이 지나도 한결같은 이 골목에서 밥을 먹으며 아이들은 꿈을 찾고, 어른들은 추억을 찾는다.

이유주현 기자, 김도원 인턴기자(서울대 외교 3)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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