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주민들의 애환과 추억이 가득 담긴 고모역이 오는 11월 80여년만에 문을 닫는다.
경부선 동대구~경산 사이
80년 주민애환 간직한 곳
이용 줄어 11월1일 업무 끝
80년 주민애환 간직한 곳
이용 줄어 11월1일 업무 끝
“고모역이 사라진다는 소식 듣고 섭섭해서 한번 와 봤지. 소 등에 타고 장에 나가 소를 판 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와 기차 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지난 31일 고모역 대합실에서 만난 김아무개(55)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군에서 제대한 뒤 이사할 때까지 늘 고모역을 이용했다”며 “대구역까지 가는데 30분이 걸릴 정도로 느렸지만 북적대는 인파 때문에 지루한 줄 몰랐다”고 회상했다. 고모 마을 이장 김한우(49)씨도 “주민들의 애환이 묻어 있는 고모역이 사라져 너무 섭섭하다”고 말했다.
경부선 동대구역~경산역 중간쯤에 자리잡은 고모역이 80여년만에 문을 닫는다. 1925년 처음 문을 연 고모역은 오는 11월1일 정식으로 업무를 중단한다. 그동안 통근열차와 완행열차 등이 정차했던 고모역은 2004년 7월 여객업무를 중단한 데 이어 11월부터는 화물업무도 근처 경산역으로 넘겨줬다. 현재 고모역에서 3교대로 근무하는 직원 6명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한국철도공사 대구지사 박윤환(39) 차장은 “승용차가 크게 늘어나면서 승객이 줄어들어 역을 없애기로 결정했다”며 “앞으로 고모역은 직원이 상주하지 않는 ‘무배치 간이역’으로 분류되고 안전을 위해 역사 출입이 통제된다”고 말했다.
고모역은 대합실 문이 미닫이로 돼 있을 정도로 오래됐으며 1953년에 재건축됐다. 11월 이후 역이 문을 닫더라도 역 건물은 보존할 계획이다.
고모역은 대구 수성구 파크호텔에서 팔현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인 ‘고모령’ 아랫쪽에 자리잡고 있다. 대중가요 <비내리는 고모령>이 유행하면서 한때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 노래는 형제봉을 바라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박시춘씨가 작곡하고 가수 현인씨가 불러 전 국민의 애창곡이 됐다.
고모령은 형제가 싸우는 모습을 보다 못한 어머니가 낙담해 집을 떠난 뒤 하염없이 길을 걷다가 고갯마루에서 뒤돌아 집을 봤다는 전설에서 유래해, 돌아볼 고(顧)자와 어미 모(母)자를 써 그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2001년 초 <비내리는 고모령> 노래비가 파크호텔 들머리에 세워졌고, 2005년 10월에는 고모역에 박해수(58) 시인이 시비를 세우기도 했다.
박 시인은 “고모역은 자식들 교육비 마련을 위해 부모님들이 닭, 오리를 장에 팔면서 이용하던 역이었다”며 “효행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역 건물을 부모의 사랑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장소로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구대선 기자, 이은지 인턴기자(경북대 신문방송 졸) sunnyk@hani.co.kr
글·사진 구대선 기자, 이은지 인턴기자(경북대 신문방송 졸)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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