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밤 경주시 감포읍 사무소 앞에서 한수원 본사 유치 시위를 벌이던 한 주민이 쇠수레를 밀고 경찰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최종 후보지 도심권으로 추천되자
원전주변 동경주 주민들 격렬시위
원전주변 동경주 주민들 격렬시위
한수원 본사 유치 ‘두쪽난 경주’ 가보니 “죽자! 죽자! 죽음으로 막아내자! 다같이 죽자!” “한수원 본사 필요없다. 방폐장 가져가라.” 27일 저녁 경주시내에서 감포로 향하는 지방도로 변에는 섬뜩한 격문들을 담은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도로 곳곳에는 경찰이 삼엄한 검문검색을 펴고 있었다. “방폐장 도로 가져가라”=이날 저녁 8시 경주시 감포읍 사무소 앞은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방송차량 스피커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읍사무소 앞을 막은 경찰과 1000여명의 시위대 사이에서는 시위대가 놓은 화톳불이 거세게 타올랐다. 불길이 읍사무소 앞을 가로지르는 전기선까지 치솟자 경찰이 소화기를 들고 진화에 나섰고 시위대와 몸싸움이 시작됐다. 지난 25일 월성원전 주변 동경주지역(양북·양남면, 감포읍)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본사 유치시위는 이날까지 멈출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었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다 손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던 한 40대 여성은 “핵쓰레기는 우리한테 떠넘기면서 혜택은 42㎞나 떨어진 경주도심에 다 넘기려 한다”며 “경주시장이 한수원 본사를 양북면에 준다고 약속하고도 이를 어겨 제2의 부안사태를 만들고 있다”고 부르짖었다. 양북면에서 매점을 열고 있는 김아무개(68)씨는 “방폐장을 수용했던 것은 한수원 본사 직원들이 함께 생활할 만큼 안전하다고 했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약속을 어길 수가 있느냐”며 분개했다. 경주시 정책혼선이 원인=동경주 주민들의 시위는 지난 21일 경주시가 당초 후보지로 논의됐던 양북면이 아닌 경주도심권을 최종입지로 추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방폐장 인접지역인 동경주 지역은 경주 도심과 42㎞나 떨어진데다 추령재가 가로막고 있어 행정구역만 같을 뿐 사실상 별개지역이란 게 이 지역 주민들의 설명이다. 경주시민 30만 가운데 불과 1만8천여명이 이 지역에 살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방폐장을 제공하고도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은 거의 없을 것이란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함구해오던 백상승 경주시장은 28일 도심권 이전 추천을 사실상 시인했다. 백 시장은 “한수원 관련기업들의 동반이전 여부가 결정의 핵심이유”라고 밝혔다. 한편, ‘경주 도심권 위기대책 범시민연대’ 소속 주민들은 한수원의 경주도심 이전을 요구하며 경주시청 앞에서 지난 19일부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박동섭 범대위 집행위원장은 “한수원이 동경주에 자리잡을 경우 가족을 서울에 두고 혼자 오거나 ‘무늬만 본사이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갈수록 쇠퇴해가는 경주 전체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시내로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수원은 8월 말까지 본사 이전지를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법적시한인 내년 1월1일을 코앞에 두고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경주/글·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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