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심히 달리다보면 ‘인생의 해’ 뜨겠죠
“새벽과 동틀무렵이 좋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에요.”
아직 캄캄한 어둠이 사방에 드리운 10일 새벽 3시 30분, 광남자동차 9년차 버스기사 이한영(41·사진)씨의 하루는 자명종과 핸드폰 알람, 자동예약으로 켜지는 티브이 소리와 함께 온 가족의 잠을 깨우며 시작된다.
어렵게 몸을 일으킨 이씨가 대구시 동구 봉무동 파군재 삼거리의 버스 차고지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 40분께. 살을 에는 칼바람속에서도 이미 차고지의 70대 버스 중 상당수는 시동을 걸고 있다. 사무실로 들어가 배차시간을 확인한 뒤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동료들과 잠깐 대화를 나눈다. 광남 자동차는 사원주주 회사다. 누적 적자로 임금이 3개월씩 밀리자 직원들이 나서서 회사를 인수해 직접 운영한다. 이씨는 밝고 긍정적인 성격 때문에 동료들에게 인기가 많아 동료들의 추천으로 8명을 뽑는 사주조합 이사로도 출마한다.
오전 5시 10분, 버스 출발지인 대구역으로 향하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이씨의 허리춤 열쇠고리에 매달린 아내와 딸의 사진이 반짝인다. 이씨는 최근 아내가 한 방송사의 아침프로그램에 응모해 ‘최고 남편’으로 선정됐을 정도로 보기드문 애처가다. 그의 집에서는 요리든, 설거지든 남녀구분이 없다. 큰 딸을 낳았을 때 아이의 천기저귀 손빨래는 어머니가 만들어 준 재활용 비누로 이씨가 도맡아했다. 그는 “항상 상대방의 자리에 서서 처음같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게 행복비결이다”고 말했다.
오전 5시 40분, 대구역에 도착한 980번 버스는 이곳에서 경산시 영남대까지 한시간 남짓, 아직 해뜨기 전의 어둠 속을 달린다. 길거리의 집들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고, 편의점과 새벽 식당과 인부들이 피워놓은 드럼통의 장작불만이 등대처럼 불을 밝힌다.
간혹 밤을 지새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젊은이도 보이지만, 손님들의 대부분은 공장이나 건설현장, 아파트 청소일 등을 나가는 노동자들이다. 새벽 일 나가는 이들을 볼 때마다 같은 처지지만 이씨는 안스럽다. 새벽이 아니라도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의 대부분은 여성이나 어린이나 노인들이나 가난한 서민들이다. 이씨는 몇해 전 이들을 위해 보름동안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버스를 몰며 어린이들에게 여러 모양으로 만든 풍선을 나눠주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사정이 어려워진 뒤로는 그마저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씨가 받는 봉급은 실수령액 145만원. 상여금 400%가 책정돼 있지만 벌써 두 달째 상여금이 밀렸다.
이씨는 “계속 줄어드는 버스 이용인구와 매달 갚아야 할 빚때문에 상여금 지급이 늦어지지만 월급 몇 푼 더받으려 힘든 동료들을 버리고 다른 회사로 옮길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6시 40분, 버스가 영남대 부근 종점에 도착한다. 구내식당에서 콩나물국으로 식사를 마치고 식당 문을 나서자 막 먼동이 터온다. 올해는 회사사정도 좋아지고, 바라던 개인택시도 나오고, 그래서 나중엔 작은 가게라도 열었으면 하는게 이씨의 소망이다. 대구/글·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이씨는 “계속 줄어드는 버스 이용인구와 매달 갚아야 할 빚때문에 상여금 지급이 늦어지지만 월급 몇 푼 더받으려 힘든 동료들을 버리고 다른 회사로 옮길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6시 40분, 버스가 영남대 부근 종점에 도착한다. 구내식당에서 콩나물국으로 식사를 마치고 식당 문을 나서자 막 먼동이 터온다. 올해는 회사사정도 좋아지고, 바라던 개인택시도 나오고, 그래서 나중엔 작은 가게라도 열었으면 하는게 이씨의 소망이다. 대구/글·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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