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채무피해 사례집
신용불량자 사연 ‘절절’
신용불량자 사연 ‘절절’
2001년 10월 회사의 경영악화로 ㄱ씨를 비롯한 관리자들은 월급을 반납했고, ㄱ씨는 3개의 카드를 돌려가며 그 빚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어떻게든 회사를 살리려 몸부림 쳤지만 경영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ㄱ씨는 카드빚만 연체시키게 됐다. 회사는 끝내 최종 부도 선언과 폐업으로 산산조각 났고 ㄱ씨는 결국 법원에 파산신청서를 냈다. ㄱ씨는 신용불량자를 거쳐 최근에는 노숙자로 전락했다.
생후 34개월만에 입양되고 3살 때 소아마비 장애를 입었던 ㄱ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성실하게 살려고 몸부림쳤다. 봉제기술자로 최선을 다해 어느덧 숙련공이 되고 중견업체의 관리자로 채용도 됐다. 하지만 업계의 사양화는 그의 모든 노력을 배신했다.
대구 인권운동연대가 2005년 8월부터 개최했던 ‘금융피해자 파산학교’ 100회차를 맞아 이 학교를 거쳐간 수 많은 ‘금융채무피해자’(신용불량자)들의 사연을 모은 사례집 <단 하루라도 빚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메이데이)를 펴냈다.
이 책에는 ㄱ씨 외에도 아내의 암투병에 든 과도한 의료비로 빚더미에 오른 채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대학교수, 남편의 정리해고와 집 장만에 든 과도한 부채 때문에 가정이 깨진 채 정부의 생계보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40대 여성 등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불행한 사연이 구구절절이 담겨 있다. 이와 함께 외환위기 이후 금융채무정책 10년의 변화도 꼼꼼히 짚고 있다.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상임활동가는 “이 책에 실린 파산신청 사례들은 채무자들이 무모한 낭비자가 아니라 뜻밖에 정직하고 성실한 모범 시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신용불량자라는 말 대신 추심기관의 빚독촉과 살인적인 고금리에 시달리는 금융피해자로 이들을 불러야 하며, 이런 시각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다.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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