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유옥연 할머니의 뒤를 이어 주모가 된 권태순씨와 새단장한 삼강주막.
경북도·예천, 낙동강길 마지막 주막 지난달 복원
인심·추억도 ‘안주’…주모 “서울 손님까지 찾아와”
인심·추억도 ‘안주’…주모 “서울 손님까지 찾아와”
지난 24일 오후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삼강주막’에 도착하자 난데없이 주막 방안에서 구성진 뱃노래 가락이 흘러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을 사람 대여섯명과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조홍래(72·풍양면 공덕1리)씨가 옛 추억에 젖어 <삼강 뱃사공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네 팔자 사공일세…. 삼강의 나루터라/저 건너 저 주막의 텁텁한 막걸리가/사공의 몫일세….”
풍양면 공처농요 앞소리꾼이기도 한 조씨는 “어린시절 더운 여름이면 속옷도 안걸치고 발가벗은 건장한 뱃사공이 배를 저어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주막 주변 강가에서 빨래하던 젊은 아낙들이 안보는 척 이를 훔쳐보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며 막걸리잔을 들었다.
함께 있던 정인양(68)씨는 “주막이 옛모습 그대로 깔끔하게 복원돼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이라며 “막걸리 한 되 사먹으면 안주 서너가지를 거저 내주던 인심 후한 주모 유씨 할머니가 금새라도 문을 열고 들어설 것 같다”고 말했다.
낙동강 1300리 물길의 마지막 남은 주막인 ‘삼강주막’이 옛 모습을 되찾았다. 경북도와 예천군은 지난해 12월 삼강주막이 복원되자 삼강마을 주민 가운데 새 주모 권태순(70)씨를 뽑아 옛 주막의 토속음식을 먹고, 주모의 구수한 입담을 들을 수 있는 주막으로 꾸며 지난 17일부터 영업을 재개했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의 세 강줄기가 몸을 섞는 삼강. 한때 낙동강 하구에서 싣고 온 소금과 내륙의 쌀을 교환하던 상인과 보부상, 시인 묵객들이 들끓던 삼강나루터는 1970년대 다리가 생긴 뒤 발길이 끊어지고 시간이 멈춘듯 삼강주막만 외로이 남아있었다. 이 주막은 고 유옥연 할머니가 70여년 동안 낙동강의 마지막 주모로 그 명맥을 유지해 왔지만 2005년 유 할머니가 세상을 뜬 뒤 한동안 방치돼 왔다.
경북도와 예천군은 이곳을 민속자료로 지정한 뒤 1억5천만원을 들여 방 2개와 툇마루, 원두막 2채를 갖춘 옛 토담 초가 주막을 복원했다. 당시 글씨를 모르는 유옥연 할머니가 눈금으로 외상값을 표시해 놓은 벽은 그대로 남겼다. 옛 주모의 인심을 이어 묵과 두부는 2천원, 배추전 3천원 등 안주값도 싸다.
주모 권씨는 “문을 연 뒤 멀리 서울에서까지 소문을 듣고 손님들이 찾아와 눈코 뜰 새 없다”며 “한집 식구처럼 지내던 유씨 할머니를 생각하며 이곳을 오래오래 보존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온 정재군(50·강동구 명일동)씨는 “보부상의 추억담과 손수 만든 동동주, 묵, 두부가 있어 어린 시절 고향에 온 듯한 운치가 있다”며 즐거워 했다. 경북도와 예천군은 앞으로 9억원을 들여 주막 주변에 옛 뱃사공·보부상 숙소를 복원할 방침이다. 예천/글·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삼강주막
서울에서 온 정재군(50·강동구 명일동)씨는 “보부상의 추억담과 손수 만든 동동주, 묵, 두부가 있어 어린 시절 고향에 온 듯한 운치가 있다”며 즐거워 했다. 경북도와 예천군은 앞으로 9억원을 들여 주막 주변에 옛 뱃사공·보부상 숙소를 복원할 방침이다. 예천/글·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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