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규 할아버지는 3년째 매일 아침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모산의 구룡천 약수터 주변을 청소하고 있다. 강남구청 제공
“3년간 빗자루 6개는 닳아 없앴지”
91살 고령에도 새벽청소 3년째 계속
서울 강남구 개포동 일대 대모산. 해발고도 293m로, 높이로는 북한산·도봉산에 견줄 바가 못되지만 들을 품고 있는 품새가 넉넉해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산이다.
강남개발 이후 대모산 주변이 ‘부자동네’가 되면서 산도 오목조목 잘 가꿔졌다. 산 입구 쪽엔 각종 희귀나무들을 심어놓은 자연학습장이 있고 물맛 좋은 약수터도 여럿 만들어져 깔끔하게 정비됐다.
그중 하나인 구룡천 약수터(개포동 주공아파트 2단지 뒷쪽)는 공간을 가꾸는 일이 돈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정성이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이 약수터엔 매일 새벽 5시면 빗자루를 든 노인 한 분이 올라와 팔을 걷어붙인다. 약수터에 맞붙은 마당 3곳을 쓱싹쓱싹 빗질하다보면 어느새 7시를 훌쩍 넘긴다. 참빗으로 곱게 빗질한 머리처럼 마당을 깨끗이 쓸어놓고 약수를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벌써 3년째다.
30여년전 부산시청 재무과를 끝으로 공직 생활을 접은 최성규(91·서울 강남구 개포동) 할아버지는 외아들을 따라 서울로 올라온 뒤 20년 가까이 개포동 일대에서 살고 있다.
물맛이 좋아 구룡천 약수터를 평소 즐겨 찾았지만 막상 매일 아침 청소를 시작한 것은 친구 때문이었다. 처음 서울살이를 할 때 사귀었던 이웃 허동벽(93·개포동) 할아버지가 구룡천 약수터를 지키는 회원을 함께 하자고 꾀었던 것이다. 편안히 회원 노릇할 수도 있었을 텐데 최 할아버지는 굳이 빗자루를 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에 공무원을 해서 그런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청소하는 것이 익숙하다”는 최 할아버지는 새벽마다 2시간씩 마당을 쓸었고 그 바람에 빗자루 대여섯개가 닳아버렸다. 빗자루가 닳아가는 동안 새벽마다 깨끗한 약수터를 찾는 사람들의 고마움도 쌓였다. 이웃들은 약수터 안내판에 최 할아버지의 노고를 기록해 고마움을 표했다.
서울시 푸른도시국은 지난 14일 최 할아버지처럼 동네 주변을 부지런히 쓸고 닦은 ‘우수 그린 오너’들에게 표창장을 전했다. ‘그린 오너’란 공원·가로수·약수터·마을마당처럼 주인없는 공공 공간을 책임지고 가꾸는 제도다. ‘시흥1동 마을 지킴이’ 등 단체 6곳과 개인 11명이 지난 한해 열심히 일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이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최 할아버지는 “내 건강에 좋아서 한 일인데 뭐”라며 웃었다.
이유주현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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