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의 눈]
불길 덮친 영국사 지키느라 안간힘
숯더미로 변한 산 바라보며 눈물만 “얼굴만 남기고 다 탔네요. 살아서는 옛 천태산을 못볼 것 같네요.” 29일 새벽 어둠이 걷히면서 밤새 불에 새까맣게 탄 천태산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20년 동안 날마다 충북 영동군 천태산을 오르내리며 산을 가꿔온 ‘천태산 산신령’ 배상우(74·금오약방 운영)씨는 눈물을 흘렸다. 27일부터 계속된 불덩이가 밤새 영국사 주변을 뺀 천태산 전역을 태우는 것을 숨죽이며 지켜봤지만 숯더미로 변한 산을 보는 순간 가슴이 미어졌다. 강풍을 엎은 불길이 영국사를 위협하고, 밤을 틈타 산을 태우고 있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너무나 참혹한 모습에 배씨는 한동안 넋이 빠진 듯 절 주변을 서성거렸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절과 산을 지키려 노력했기에 충격은 더 컸다. 너무나 불길이 거세 천태산을 포기하고 ‘영국사 사수 작전’을 벌이던 때는 몸 한 쪽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영국사 신도회장이기도 한 배씨는 비상연락으로 대전·옥천·영동 등에 있는 신도 50여명을 모아 보물 영산회후불탱 등 유물 100여점을 옮겼으며 절 주변에 물과 소화 분말을 뿌리는 등 절을 지키는데도 안간힘을 썼다. 배씨는 “불이 잠잠해진 뒤 잠을 청하려 자리에 누웠으나 산이 어른거려 눈을 붙이지 못했다”며 “천년고찰 영국사를 지켜 내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산에 미안했다”고 말했다. 배씨는 1986년부터 천태산을 오르며 가파른 등산로 30여 곳에 줄을 매고, 안내판을 만들고, 등산로를 정비했으며 손수 지도까지 만들어 나눠 주는 등 천태산을 가꿔왔다. 산 정상에 16년 동안 방명록을 비치하는 등 산 아래부터 위까지 그의 발길,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배씨는 “20년 동안 산을 가꿔 이제 ‘영동의 얼굴’을 넘어 명산 반열에 올라 기뻐했는데 2일만에 재가 돼 허망하다”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하다”고 안타까워했다. 27일부터 계속된 불로 천태산의 울창한 소나무·참나무 숲, 노루·토끼·멧돼지 등 동물, 송이버섯·고사리 등 식물 모두 피해를 입었다. 배씨는 “어림잡아 100만평 정도가 불에 탄 것 같다”며 “적어도 100년은 지나야 천태산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영동/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아픈 아줌니 모실 방 한칸이라도…” 불난리에 집잃은 김옥화씨 ‘깊은 주름’
“우리야 어떻게든 견뎌보겠지만 몸이 불편한 시숙이 걱정이네요.” 29일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원포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김옥화(49)씨는 불타버린 집보다 아주버니 걱정이 앞섰다. 지난 1994년 남편이 병으로 숨진 뒤 김씨는 고된 농삿일과 공장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세 딸과 귀가 안 들리는 시숙 정상용(74)씨를 뒷바라지해왔다. 그런 탓인지 김씨 눈가의 주름은 굵고 깊었다. 어렵지만 단란한 삶을 지켜주던 김씨의 집은 28일 현남면에서 일어난 산불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6·25 전쟁때 청력을 잃고 최근에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정씨는 바람을 타고 산불이 마을을 덮치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마침 주문진으로 약을 사러갔다 돌아오던 김씨는 산불이 마을로 번지는 것을 보았다. 방망이질하는 가슴으로 다급히 집으로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도 막내딸 정순옥(20)씨가 전화를 받아 그나마 화를 피할 수 있었다. 이날 산불로 이 마을에서만 9채의 집이 연기로 사라졌다. 당시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 내리던 김씨는 이달 초 양양 산불이 낙산사를 집어 삼켰을 때만 해도 옆 동네 일로만 생각했다고 한다. “물난리 무서운 줄은 3년 전 태풍 ‘루사’로 알았지만 불난리까지 겪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요즘엔 김씨 역시 몸이 안 좋아 일을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게다가 대학진학을 준비 중인 막내딸은 공부할 곳은 물론 책까지 몽땅 불타버렸다. 김씨는 “마을회관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지만 시숙과 아이들이 다리 뻗고 쉴 수 있는 콘테이너집이라도 서둘러 지원됐으면 한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양양/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숯더미로 변한 산 바라보며 눈물만 “얼굴만 남기고 다 탔네요. 살아서는 옛 천태산을 못볼 것 같네요.” 29일 새벽 어둠이 걷히면서 밤새 불에 새까맣게 탄 천태산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20년 동안 날마다 충북 영동군 천태산을 오르내리며 산을 가꿔온 ‘천태산 산신령’ 배상우(74·금오약방 운영)씨는 눈물을 흘렸다. 27일부터 계속된 불덩이가 밤새 영국사 주변을 뺀 천태산 전역을 태우는 것을 숨죽이며 지켜봤지만 숯더미로 변한 산을 보는 순간 가슴이 미어졌다. 강풍을 엎은 불길이 영국사를 위협하고, 밤을 틈타 산을 태우고 있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너무나 참혹한 모습에 배씨는 한동안 넋이 빠진 듯 절 주변을 서성거렸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절과 산을 지키려 노력했기에 충격은 더 컸다. 너무나 불길이 거세 천태산을 포기하고 ‘영국사 사수 작전’을 벌이던 때는 몸 한 쪽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영국사 신도회장이기도 한 배씨는 비상연락으로 대전·옥천·영동 등에 있는 신도 50여명을 모아 보물 영산회후불탱 등 유물 100여점을 옮겼으며 절 주변에 물과 소화 분말을 뿌리는 등 절을 지키는데도 안간힘을 썼다. 배씨는 “불이 잠잠해진 뒤 잠을 청하려 자리에 누웠으나 산이 어른거려 눈을 붙이지 못했다”며 “천년고찰 영국사를 지켜 내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산에 미안했다”고 말했다. 배씨는 1986년부터 천태산을 오르며 가파른 등산로 30여 곳에 줄을 매고, 안내판을 만들고, 등산로를 정비했으며 손수 지도까지 만들어 나눠 주는 등 천태산을 가꿔왔다. 산 정상에 16년 동안 방명록을 비치하는 등 산 아래부터 위까지 그의 발길,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배씨는 “20년 동안 산을 가꿔 이제 ‘영동의 얼굴’을 넘어 명산 반열에 올라 기뻐했는데 2일만에 재가 돼 허망하다”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하다”고 안타까워했다. 27일부터 계속된 불로 천태산의 울창한 소나무·참나무 숲, 노루·토끼·멧돼지 등 동물, 송이버섯·고사리 등 식물 모두 피해를 입었다. 배씨는 “어림잡아 100만평 정도가 불에 탄 것 같다”며 “적어도 100년은 지나야 천태산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영동/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아픈 아줌니 모실 방 한칸이라도…” 불난리에 집잃은 김옥화씨 ‘깊은 주름’
“우리야 어떻게든 견뎌보겠지만 몸이 불편한 시숙이 걱정이네요.” 29일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원포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김옥화(49)씨는 불타버린 집보다 아주버니 걱정이 앞섰다. 지난 1994년 남편이 병으로 숨진 뒤 김씨는 고된 농삿일과 공장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세 딸과 귀가 안 들리는 시숙 정상용(74)씨를 뒷바라지해왔다. 그런 탓인지 김씨 눈가의 주름은 굵고 깊었다. 어렵지만 단란한 삶을 지켜주던 김씨의 집은 28일 현남면에서 일어난 산불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6·25 전쟁때 청력을 잃고 최근에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정씨는 바람을 타고 산불이 마을을 덮치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마침 주문진으로 약을 사러갔다 돌아오던 김씨는 산불이 마을로 번지는 것을 보았다. 방망이질하는 가슴으로 다급히 집으로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도 막내딸 정순옥(20)씨가 전화를 받아 그나마 화를 피할 수 있었다. 이날 산불로 이 마을에서만 9채의 집이 연기로 사라졌다. 당시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 내리던 김씨는 이달 초 양양 산불이 낙산사를 집어 삼켰을 때만 해도 옆 동네 일로만 생각했다고 한다. “물난리 무서운 줄은 3년 전 태풍 ‘루사’로 알았지만 불난리까지 겪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요즘엔 김씨 역시 몸이 안 좋아 일을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게다가 대학진학을 준비 중인 막내딸은 공부할 곳은 물론 책까지 몽땅 불타버렸다. 김씨는 “마을회관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지만 시숙과 아이들이 다리 뻗고 쉴 수 있는 콘테이너집이라도 서둘러 지원됐으면 한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양양/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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