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 노인회관 지하 이발소에서 ‘실버’ 이발사 진은양씨가 정재원 할아버지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송파구 노인회관 이발소 운영하는 진은양씨
이발 3천원·염색 5천원<>이사간 노인들도 찾아와
“벌써 6년째야. 3년 전에 안산으로 이사했는데 다른 데는 성이 안 차서 여기만 와.”
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 노인회관 지하 이발소에서 단돈 3천원에 머리를 깎고 면도를 마친 정재원(89) 할아버지는 흡족한 표정으로 연신 이발소를 칭찬했다. 얼마 전 한 달간의 이발소 리모델링 공사기간에 세 번이나 헛걸음을 했단다. 정씨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라 걸음도 느리고 귀도 어둡지만 깨끗한 옷차림에 중절모를 챙겨 쓰는 멋쟁이 할아버지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이·미용사가 모두 노인들인 송파구 노인회관 지하의 ‘실버 이발소·미용실’이 인기를 얻고 있다. 문을 연 지 17년 된 이발소가 할아버지들에게서 입소문이 나자, 지난 4월 노인회관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서 미용실도 새로 만들었다. 두곳 모두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며 커트는 3천원, 파마·염색은 5천원으로 일반 이발소·미용실의 반값도 안 된다.
이곳에서 13년 동안 이발사로 일해온 할아버지 이발사 진은양(78)씨의 실력은 이발소 리모델링 공사 뒤 더 빛났다. 공사기간에 머리를 깎지 못한 할아버지들이 공사 뒤 한꺼번에 몰려와 한동안 이발소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손님이 너무 많이 몰릴 때는 옆에 새로 문을 연 미용실에서 미용사 할머니의 손을 빌리기도 했다. 진씨는 “아파서 누워 있는 노인들도 꼭 ‘예쁘게 해달라’고 말한다”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노인이나 젊은이나 모두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달에 한번씩 요양원 자원봉사를 간다는 진씨는 “워낙 요금이 싸서 돈벌이는 안 되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문을 연 미용실의 여주인은 연명숙(63)씨다. 영국·프랑스에서 미용연수를 받고 40년 동안 미용실을 운영한 베테랑 미용사다. 이곳에 와서 일하기 전에도 구치소, 섬, 노인정 등에서 미용 자원봉사를 해왔다는 연씨는 “파마값과 파마 약값이 비슷해 남는 게 거의 없다”면서도, “그저 봉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한다”고 말했다. 연씨는 “옆집 이발소처럼 입소문이 많이 나서 손님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이 ‘실버 이·미용실’ 사업을 추진한 이장호 송파구 사회복지과 주임은 “할아버지 이발사가 워낙 인기가 좋았고, 할머니들 숫자가 4배나 더 많아 리모델링하면서 미용실도 문을 열었다”며 “값은 싸지만 수준은 최고인 이발소·미용실에서 더 많은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멋쟁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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