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 금천면 동악리 남일호(62)씨가 주민들이 임시로 짓고 있는 컨테이너 개조주택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이전 약속한 공공기관들 후속조처 없어 ‘속앓이’
“비싼 값에 택지·상가터 샀는데…어찌살지 막막”
대책위, 면담 요청 공문…불발땐 시위불사 태세
“비싼 값에 택지·상가터 샀는데…어찌살지 막막”
대책위, 면담 요청 공문…불발땐 시위불사 태세
“혁신도시 건설에 차질이 생기면, 고향을 내준 우리 같은 주민들은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됩니다.”
최근 전남 나주시 광주·전남 공동 혁신도시 건설 현장 부근에서 만난 남일호(62·금천면 동악리)씨의 말이다. 남씨는 배 농사를 지으며 36년 동안 살았던 고향 마을을 혁신도시에 내줬다. 지금은 인근 다시면 동곡리에서 컨테이너를 개조한 집에 살고 있다. 850만원을 주고 산 집은 10평 정도에 불과하다. 남씨는 “고향에서 쫓겨난 보상금으로 농가 부채를 갚고 나면 집 한 채 겨우 장만할 수 있다”며 “공공기관 이전마저 불투명해,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주민 임채곤(50)씨도 “다시 옛 터전으로 돌아오기 위해 주변 빈집이나 아파트 등에 세 들어 살면서 혁신도시 완공을 기다리는 주민들이 많다”며 “혁신도시 건설이 더디게 진행돼 주민들이 오도 가도 못하며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6일 정부가 부산, 대구, 광주·전남 등 혁신도시 10곳의 발전 방안을 최종 발표했지만, 주민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이전하기로 한 공공기관들이 터 매입 등의 후속 조처를 하지 않고, 혁신도시 조성사업의 공정률이 평균 10% 안 될 만큼 더디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자칫 혁신도시가 유령도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나주 혁신도시로 이전할 10개 기관 중 터 매입 계약을 정식으로 한 곳은 아무 곳도 없다. 나주 혁신도시 터 이주민 427가구 중 50여가구는 인근의 셋방으로 옮겨 살며 혁신도시가 완공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경북 김천 혁신도시도 마찬가지다. 김천 혁신도시로 이전할 13개 기관 중 터 매입 계약을 한 기관이 한 곳도 없는 것은 물론 규모가 큰 한국전력기술 등 3곳은 아직 이전 승인조차 나지 않았다. 김천혁신도시 주민보상대책위원회 박세웅 위원장은 “지역 주민들이 혁신도시에서 생활하기 위해 비싼 값을 주고 이주자 택지나 상가 터 등을 구입한 상황에서 이전 계획이 애초 조감도보다 축소되거나 마냥 지연되면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전국 10개 혁신도시 주민들로 구성된 ‘전국혁신도시 주민보상대책위’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들은 최근 대통령실장, 한나라당 대표, 국토해양부 장관 및 이전이 결정된 93개 공기업 대표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들은 지난달 말까지 면담 일정을 통보해 줄 것을 요구하고, 성사되지 않을 경우 대규모 시위를 벌이겠다고 해 놓은 상황이다. 대책위는 “이전 기관들이 터 매입 및 청사 설계비를 확보해 놓고도 계약을 하지 않아 지방공사의 자금난, 편입지역 이주민의 혁신도시 내 재정착 불확실성 등 문제를 낳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의 박경석 정책국장은 “공기업이 10개 혁신도시로 내려온다고 했는데 50개 기관이 예산을 확보하고도 아직 터 매입 등 후속 조처를 한 곳이 거의 없다”며 “불안한 마음에 대통령실장과 국토부 장관 면담 등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국토부에서 일정대로 잘 추진되고 있다는 회신이 왔을 뿐 청와대나 한나라당 쪽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대구 나주 진주/글·사진 박영률 정대하 최상원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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