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동호인 수리 요구엔 귀 막더니…
‘천하무적팀’ 경기 위해 2천만원 써 비판 자초
‘천하무적팀’ 경기 위해 2천만원 써 비판 자초
시민의 안전을 위해 낡은 야구장을 보수해 달라는 요구를 수년 동안 묵살해온 전북 전주시가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 녹화를 위해 이 야구장을 보수해줘 “시민들의 안전보다 방송 프로그램 녹화가 더 중요하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 프로야구단이 해체된 뒤 전주시 덕진동 종합경기장 야구장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이 곳을 이용하는 전주시 통합야구협회 소속 32개 동호인 야구팀과 전라중학교 야구부는 지난 10년 동안 “선수들을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해왔으나, 전주시는 이 야구장이 철거 예정이라며 이를 묵살해왔다.
그러나 수년 동안 미동도 없었던 전주시와 시 시설관리공단의 태도는 하루 아침에 바뀌었다. <한국방송>에서 지난 28일 연예인으로 이뤄진 천하무적 야구단과 전주시 피닉스 야구단의 경기를 열기로 하자, 사흘 앞둔 지난 25일부터 갑자기 2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이 야구장을 보수한 것이다.
보수는 사흘 동안 번개불로 콩 구어먹듯 이뤄졌다. 경기장과 관중석 사이의 그물을 교체하는 데 1500만원, 흉물스럽던 담장을 칠하는 데 450만원, 곳곳이 뜯긴 울타리(펜스) 보수에 50만원을 들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시설관리공단 직원을 동원해 운동장을 대형 롤러로 밀었고, 잡초가 무성했던 잔디도 말끔히 깎았다. 비만 오면 운동장의 모래가 쓸려내려와 막히고 물바다가 됐던 하수구도 이번에 뚫었다. 관중석 바닥의 껌까지 떼어냈다.
이런 사흘간의 긴급 보수공사를 마치고 천하무적과 피닉스 야구단은 지난 28일 경기를 열었고, 피닉스가 8대 7로 이겼다. 이 프로그램은 다음달 3일 텔레비전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그러나 전주의 야구팬들은 씁쓸해했다. 김아무개(35)씨는 “<한국방송>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의 협조공문 한 장이 선수와 관중들의 안전을 위해 그물만이라도 교체해달라는 수백명의 전주시 야구 동호인들의 요구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고 말했다. 전북도 야구협회는 “이제 전광판만 손보면 전국대회도 유치할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는 보수를 요구해온 야구인들에게 잘 된 일이지만, 사흘만에 이렇게 쉽게 될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장변호 시 체육지원과장은 “야구 동호인들을 위해 내년에 야구장을 보수할 계획이었는데, 이번 행사를 계기로 미리 보수한 것”이라며 “체육예산이 없어 예비비를 일부 지원받았다”고 말했다.
전주시는 올해부터 2015년까지 이번에 보수한 야구장을 포함해 덕진동 종합경기장을 모두 헐고 그 자리에 컨벤션센터와 호텔 등을 지을 계획이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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