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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건물잔해·쓰레기더미 속 사람이 산다

등록 2009-10-14 21:43

서울시가 녹지 조성을 위해 철거 중인 종로구 옥인동 옥인아파트에 14일 오전 아직 이주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한 주민이 걸어가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A href="mailto:khan@hani.co.kr">khan@hani.co.kr</A>
서울시가 녹지 조성을 위해 철거 중인 종로구 옥인동 옥인아파트에 14일 오전 아직 이주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한 주민이 걸어가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옥인동 시범아파트 보상 안끝났는데 한달 넘게 철거진행
서울시, 보상소송 1심서 진 뒤 항소여부 결정 안해
세입자 20여가구 이사 못해…“대체주택 마련을”
깨진 건물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집집마다 뜯긴 문짝은 아무렇게 처박혀 있었고, 유리창은 모두 깨져 있었다. 사람이 떠난 집에는 ‘철거’라고 적힌 글씨가 선명했다. 글씨는 새빨갰다. “이런데서 어떻게 살아요. 빨리 나가라는 협박인거죠.” 김혜옥(46)씨가 주민 2명과 아파트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며 말했다. 쓰레기는 썩고 썩어 물이 돼 버린 음식물과 뒤엉켜 악취를 풍겼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옥인동 시범아파트는 을씨년스러웠다. 지난 8월31일 철거가 시작된 뒤 아파트는 건축물 잔해와 아파트 단지 밖 주민들이 아무렇게 내다버린 쓰레기로 뒤덮였다. 철거에 따른 보상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철거 용역들은 이웃의 문을 부쉈고, 유리창을 깼으며, 망치질을 해 바닥을 모조리 파헤쳐놓았다.

김씨는 2007년 10월 이곳으로 이사왔다. 아파트는 70년대 초에 지어졌다. 보험설계사인 김씨는 두 아들을 키우며 치솟는 전셋값에 밀려 이곳으로 왔다. 주민들은 주로 서민 세입자들이었다. 보증금 6천만원에 매달 20만원씩 월세를 내고 지냈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60㎡(18평) 보금자리의 품은 세 가족이 지내기에 넉넉했다.

하지만 그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이사 오고 석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서울시가 인왕산 도시자연공원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아파트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공원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서울시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2007년 12월 10일을 임의적으로 이주대책기준일로 정하고, 기준일 이전 3개월 이상 해당 지역에 거주한 자에게만 보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준일은 공원조성계획을 발표한 날이었다. 이에 따라 김씨를 비롯해 세입자 10여명은 “서울시가 자의적으로 정한 기준일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난 3월 서울행정법원에 서울시를 상대로 주거이전비 지급 소송을 냈고, 법원은 지난 8일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주민들은 “실시계획인가고시일(2008년 4월3일)을 기준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철거는 진행됐고, 지금도 철거는 진행 중이다. 매일 아침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망치 소리와 유리 깨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소송이 끝났지만 주민들은 집을 떠날 수 없다. 서울시가 항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독주택과 달리 아파트 특성상 계단과 복도는 공유구역이고, 윗집 바닥과 아랫집 천장은 붙어 있다. 김씨는 “문 밖으로는 폐허다. 바닥에는 유리와 돌이 굴러다니고 머리 위에서 언제 돌이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공간에 아이들을 둘 수밖에 없는 엄마의 마음을 아느냐”고 말했다.

지금 이곳에는 20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남철관 성북주거복지센터 사무국장은 “사람이 떠날 수밖에 없도록 주변 환경을 조성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지금의 철거방식은 문제가 있다”며 “보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철거를 강행하는 것도 문제지만, 철거를 할 수밖에 없다면 그들을 위한 대체주택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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