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악단 지휘자들 디제이된 까닭은?
64살 음악공간 대구 ‘녹향’
경영난 도우려 헌정 공연
경영난 도우려 헌정 공연
대구 중구 화전동 옛 자유극장 골목에는 아직도 시간이 정지된 듯한 고전음악감상실 ‘녹향’(사진)이 있다.
1945년 10월 중구 향촌동에 처음 문을 연 녹향은 한국전쟁 중에는 전쟁을 피해 대구로 내려온 예술가와 지식인들로 북적였다. 구석진 자리 어딘가에서 한국인의 애창가곡 <명태>의 가사가 만들어졌고, 이중섭은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 통기타와 청바지, 생맥주, 장발로 상징되던 한 시대엔 젊은이들의 만남의 공간이자 마음의 고향이었다.
하지만 이곳도 낡은 액자 속의 색바랜 사진처럼 세월의 흐름에 밀려 오래 전부터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녹향은 더이상 달마다 내야 하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뜻있는 지역민들의 후원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서 특별한 헌정의 무대가 준비된다. 대구·경북의 교향악단을 이끄는 지휘자 5명이 17∼21일 녹향에서 일일 디제이로 나선다. 이번에 참여하는 지휘자들은 곽승 대구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비롯해 이현세(경북도향), 이재준(예술영재원), 이일구(김천시향), 박지운(대구시립오페라단) 등이다.
이들은 녹향에서 연주가 아닌 엘피와 시디로 직접 선곡한 음악을 해설을 곁들여 소개하고 관객들과 함께 음악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본 행사에 앞서 그랜드 심포니 실내악단이 연주를 들려 주고, 여든아홉 나이의 녹향 대표 이창수 옹이 <선구자>를 부른다.
이 행사가 알려지자 클래식 음악감상동호회 회원들이 나서 녹향의 묵은 때를 청소했다. 리프릿 디자인을 협찬한 디자이너, 현수막을 협찬한 기획사 대표 등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원도 잇따르고 있다고 주최 쪽은 전했다. 모든 사람이 노개런티로 행사에 참여하며, 수익금은 모두 녹향에 기부된다. 예매는 선착순이며 입장료는 학생 5천원, 일반인 1만원이다. (053)621-3301.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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