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곳 신설 획정위안 여당서 폐지·축소 움직임
다수당 독식 막을 장치, 4년전에 이어 또 위기
다수당 독식 막을 장치, 4년전에 이어 또 위기
2005년 12월23일 새벽 5시30분. 아직도 동이 트지 않아 어두컴컴한 새벽에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들이 대구시의회 본회의장 뒷문으로 들어왔다. 불을 켜면 문 밖에서 농성중인 시민단체 회원과 다른 당 시의원들이 눈치를 챌까 봐 저마다 손전등을 켜고 숨을 죽인 채 회의장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전체 시의원 27명 중 한나라당 의원 22명은 기초의원 선거구 가운데 4인 선거구 11곳을 모두 2인 선거구로 바꿔 버렸다. 제안 설명과 반대 의견 청취도 없이 5분 만에 서둘러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농성중이던 시민단체 회원들과 무소속, 열린우리당 등 시의원들은 “2인 선거구에서는 최소한 30% 이상을 득표해야 당선되지만 4인 선거구에서는 10%만 득표해도 당선이 가능하다”며 “한나라당 일색인 대구에서 소수정치세력이 기초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막아 버렸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한편의 첩보영화를 방불케 한 대구시의회의 날치기 조례 통과가 4년 만에 재연될지도 모른다. 대구시는 학계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기초의원 선거구 획정위원회’(위원장 이성수 전 대구시의회 의장)가 결정한 선거구 구역 조정 조례 개정안을 22일쯤 시의회에 넘기겠다고 20일 밝혔다.
조례 개정안에는 6월 실시되는 지방선거 때 8개 구·군에서 비례대표 14명, 지역 102명 등 기초의원 116명을 뽑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종전의 2인 선거구 27곳을 6곳, 3인 선거구는 16곳에서 14곳으로 줄이는 대신, 4인 선거구 12곳을 신설했다. 획정위원회에 참여한 대구경실련 조광현 사무처장은 “4인 선거구 신설로 한나라당 소속이 아닌 무소속 또는 소수정당에서 기초의원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획정위원 11명이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아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조례 개정안을 다음달 19일까지 처리해야 하는 시의회는 획정위원회가 신설한 4인 선거구 12곳을 2인 선거구로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선거법에는 기초의원 선거구는 획정위의 의견을 참고해 광역의회가 조례가 정하도록 돼 있다. 일부 시의원들은 “한나라당 소속 기초의원들이 4인 선거구에 대해 거부감이 만만찮다”며 “4인 선거구 12곳 모두가 없어지든지, 아니면 크게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시의원들은 “아직 한나라당 대구시당에서 구체적인 방침이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곧 의견 조율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 시민단체들은 “4년 전처럼 시의회가 조례 개정 과정에서 4인 선거구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 강력한 대응조치를 취하겠다”는 태세다. 지역에서 각각 10∼20여명의 기초의원 후보자를 낼 계획을 세우고 있는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자유선진당, 창조한국당, 민노당, 진보신당 등 야당들도 크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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