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자치운동’ 하다 제명…대구 YMCA 초대회장
대구지역에서 3.1운동을 이끈 민족 지도자이자 대구 와이엠씨에이 초대회장과 남성정교회(현 대구제일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던 이만집(1875∼1944 사진) 목사가 82년 만에 대한예수교 장로회 경북 노회에서 복권됐다.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산하 대구인권위원회는 7일, 경북노회가 이만집 목사 복권위원회(위원장 정경호)의 복권청원을 받아들여 역사연구 위원회를 조직해 논의한 결과 최근 복권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구인권위 사무국장 박순종 목사는 “이 목사는 대구지역 교회의 대사회적 선교활동을 처음으로 열어나간 선구자”라며 “그의 복권은 지역 교회의 공식 역사에서 주요한 한 부분인 종교의 사회적 역할이 제자리를 찾게 되는 출발점”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이 목사는 대구 계성학교의 창설교사이자 교남기독청년회(현 대구 와이엠씨에이)를 조직하고 초대 회장에 선출된 대구경북지역의 대표적인 민족지도자였다.
그는 1919년 2월 부터 대구경북의 3.1운동을 위해 비밀리에 모임을 가져오다 3월 8일, 지역의 교계지도자와 계성·신명·성서 학원 학생 및 졸업생들과 함게 대구 서문장터에 모여 대구 만세운동의 첫 봉화를 올렸다.
그는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일경에 체포돼 3년간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 출옥 뒤 이 목사는 지역교회가 선교사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존하는 현실에서 탈피해 한국 교인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교회 자치운동이 빌미가 돼 경북노회 내부에서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다. 갈등을 빚던 1923년, 동산성경학회에서의 충돌 사건이 빌미가 돼 이 목사는 결국 제명을 당하게 됐다. 그 뒤 이 목사는 남성정교회를 노회쪽에 인도하고 새로 봉산교회를 설립했으며 1944년 69살을 일기로 세상을 떴다.
한편, 정부는 1999년 독립운동에서의 이 목사의 공로를 인정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 목사의 복권을 주도한 정경호 영남신학대 교수는 “이 목사는 십자가를 등에 지고 태극기를 손에 든 민족지도자였다”며 “그를 복권시켜 오늘날 청소년들이 그 뒤를 따르게 하는 것은 후손들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대구/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이 목사의 복권을 주도한 정경호 영남신학대 교수는 “이 목사는 십자가를 등에 지고 태극기를 손에 든 민족지도자였다”며 “그를 복권시켜 오늘날 청소년들이 그 뒤를 따르게 하는 것은 후손들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대구/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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