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동안 서울 종로구 청진동 피맛골에서 선술집이자 밥집인 대림식당을 운영해온 석송자씨가 피맛골에서의 마지막 날인 23일 오후 가게 앞에서 고등어를 굽고 있다. 종로1가 피맛골의 선술집들은 이날 밤 12시 문을 닫은 대림식당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도깨비 세상’ 애도글 남기고
마지막 ‘대림식당’도 문닫아
마지막 ‘대림식당’도 문닫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뒤 피맛골에 있던 생선구이집 ‘대림식당’이 23일 장사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이 식당은 재개발이 한창인 종로1가 피맛골에서 유일하게 남아 장사를 해온 집이다. 이 집을 마지막으로 종로1가 피맛골의 선술집·밥집들은 모두 사라졌다. 이제 종로1가 피맛골은 역사가 됐다. 이곳은 600년 가까이 술꾼과 서민들의 거리였다. 이 좁은 골목은 지난 세월 서민들의 허기와 목마름을 달래주던 서울의 대표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피맛골은 2003년 서울시가 이 일대 재개발을 허가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는 옛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됐다. 교보빌딩에서 종로 2가 사이 0.9㎞구간은 이미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섰거나, 새 주상복합 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 곳에서 밀려난 선술집·밥집들은 흩어졌다. 그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피맛골을 무너뜨리고 들어선 주상복합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옛 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거대한 주상복합 건물은 생선구이집을 허락하지 않는다. 건물 환기시설이 음식냄새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맛골 대림식당 안주인 석송자(67)씨는 르메이에르로 가려던 계획을 접었다. 석씨는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생선구워 파는 것인데, 건물주 쪽에서 이를 못하게 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세종문화회관 부근이나 인사동 쪽을 알아보고 있다. 이날 대림식당 바깥주인 김영락(72)씨는 식당 곳곳에 ‘피맛골의 곡’이라는 만가를 남겼다. 김씨는 이 시에서 “옛 정취 숱한 사연, 애환들을 앞세우고 님은 갔습니다. 님 떠난 자리엔 도깨비 세상이 되었네…. 먼 훗날, 이방인처럼 돌아온들 무슨 정으로 맞을 건가. 600년 정분났던 옛 님이 아닌 것을”이라고 피맛골의 죽음을 애도했다. ‘도깨비 세상’에서 옛 골목은 무너졌고, 무너진 골목 위로 무슨 ‘타운’이 들어선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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