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 노숙인과 함께 ‘시’를 읽다
성공회대서 교육받는 자활노동자 대상 특강
“고통스럽지만 아름답고 가치있는 삶 고민을”
“고통스럽지만 아름답고 가치있는 삶 고민을”
여인은 시를 쓴다. 할머니라고 불리는 그 여인은 시 속에 세상의 아름다움을 담으려고 하지만 현실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비루하고 남루한 날 것 그대로의 세상에서 감독은 시가 죽어가는 시대의 추함과 더러움, 고통을 이야기한다.
22일 오후 2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피츠버그홀에서 열린 ‘이창동 감독과 함께 <시>를 읽다’라는 제목의 강좌에서 영화 <시>의 이창동 감독은 영화를 찍은 배경을 묻는 참석자들의 질문에 “세상을 사랑하고, 근심하며 떠난 사람의 마음을 이번 영화에 담고 싶었고, 이 사람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원했다”고 말했다.
이날 강의는 2008년부터 서울시가 성공회대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희망의 인문학 과정’ 가운데 하나로 마련됐다. 현재 서울시내 각 지역자활센터에서 문학, 역사, 철학, 예술사 등의 인문학 교육을 받고 있는 노숙인, 저소득층 가정의 가장들 150여명이 참석해 두 시간여 동안 이창동 감독과 함께 영화 <시>와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영화를 찍게 된 배경과 캐스팅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삶과 인문학의 미래 등에 대해 물었고, 이 감독은 하나의 질문도 흘리지 않고 질문에 답하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지금 품는 생각과 마음이 우리의 미래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며 “세상은 아름답지 않고, 고통스럽지만 영화나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봤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날 강의에 참석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도 “시라는 것은 언어를 통해 자기 삶을 정직하게 담으면 된다”며 “옷을 얇게 입은 사람들이 겨울 추위를 정직하게 느낄 수 있듯, 얇은 옷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인문학 과정 참석자들은 이번 영화를 계기로 진정성이 담긴 시를 한 번씩 써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강의는 인문학 과정 참석자들이 단체로 영화를 관람하면서 이뤄졌다. 상종열 성공회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인문학 과정 참석자들과 함께 영화 <시>를 봤는데 대부분의 교육생들이 영화에 대해 공감하는 것을 보고 이창동 감독과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현실이 노숙인, 저소득층 가정의 가장들이 직면한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이날 강의에 참석한 고광옥(51)씨는 “영화 속 미자(윤정희)를 보면서, 내가 처한 현실과 비슷해 눈물을 많이 흘렸다”며 “영화를 통해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함경아(39)씨는 “우리 같은 서민들은 힘겹게 살아가느라 생활에 여유가 없지만, 인문학 과정을 접하고 이렇게 영화를 접하면서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영화를 본 뒤 요즘은 영화 속 미자처럼 30년 만에 다시 시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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