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비용 급증에 극약처방…대통령도 “생각해볼만”
백신 접종땐 1년이상 청정국 지위 회복못해 큰타격
백신 접종땐 1년이상 청정국 지위 회복못해 큰타격
구제역이 올해 상습적으로 발생하고 매몰처분에 따른 예산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정부가 ‘극약처방’으로 꼽히는 예방주사약(백신) 접종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350만마리에 이르는 모든 소·돼지에 백신 접종을 하기로 결정하면 ‘구제역 발생국’으로 분류되고, 접종 뒤엔 1년 이상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회복할 수 없는 등 타격이 크기 때문에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백신 접종 방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17일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는 지금처럼 대대적으로 매몰하는 방역대책의 실효성을 재점검하는 한편 그동안 방역대책에서 배제했던 백신 접종 방안도 검토하기 시작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구제역이 더 나쁜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에 대비해 백신 접종 방안의 타당성을 정부 안에서 신중하게 짚고 있다”며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백신 접종을 시행할지) 뚜렷한 방침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2000년 첫 구제역 발생 때 백신 접종을 한 적이 있다.
지난 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발생 농가 주변 500m 또는 3㎞ 안의 소와 돼지 등을 매몰처분하고 가축값을 시가로 보상하는 현재 방식이 막대한 예산 낭비를 초래하고 일부 축산농가의 도덕적 해이를 낳고 있다는 지적을 일부 국무위원들이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매몰처분 비용이 과다하게 불어난다면, 백신 접종 방안도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 회의 참석자가 전했다.
올해 세 차례 구제역 발생으로 지금까지 투입된 매몰처분 예산만도 △포천 288억원 △강화 1242억원 △안동 1700억원 등 모두 3200억원에 이르렀다. 구제역이 날로 확산되고 있어 매몰 및 보상 비용은 더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 등 방역 당국의 초동대응 미흡 등으로 현행 구제역 방역체제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백신 접종 예산은 1600억원가량 든다.
그러나 정선현 대한양돈협회 전무는 “선진국 가운데 백신 접종을 하는 나라는 없다”며 “백신을 접종해 구제역 발생국이 되면, 대부분이 구제역 발생국인 후진국으로부터 값싼 축산물 수입을 막을 수 있는 검역장치가 무력화된다”고 말했다. 대만은 1990년대 후반 백신 접종을 한 뒤에도 구제역 발생이 끊이지 않아, 일본이 가장 많이 수입하던 양돈산업이 크게 위축됐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사무국장은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퍼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지금 백신 접종을 시행하면 득보다 실이 훨씬 더 많다”며 “백신을 접종받은 소와 돼지가 병에 걸리지는 않지만, 3년 이상 바이러스를 몸에 지니면서 다른 가축에 전염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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