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대응 늦어 화 키우고
감염지역에 ‘링 백신’ 처방
축산단체장들 강력 반발
감염지역에 ‘링 백신’ 처방
축산단체장들 강력 반발
구제역이 ‘비상사태’로 발전했다. 구제역 바이러스가 20여일 동안 경북에서 경기 북부로, 다시 ‘청정지역’인 강원으로 옮겨다니는 사이 정부 방역망은 허망하게 구멍이 뚫렸다. 정부는 ‘극약처방’인 예방약(백신) 접종을 하기로 22일 결정했다.
농림수산식품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초동대응 실패’가 이번 최악의 구제역 사태를 불렀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밀검사 시설이 없는 지자체에서 구제역 확진이 방치된 며칠 사이에, 사방팔방으로 구제역 바이러스가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지난 5월 강화발 구제역 발생을 전후해 ‘지방자치단체에 접수된 구제역 신고 내용을 반드시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보고해야 한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아무도 지키지 않은 ‘말잔치’에 그치고 말았다.
농식품부는 올해 세 차례 구제역 발생 때마다 축산농가의 방역 의식 부재를 질책했다. 농장주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구제역 발생국을 다녀온 뒤 소독을 제대로 않고 축사를 드나들었다는 것이다. 안동발 구제역이 경기 북부로 번진 데는 축산업 관계자들의 무분별한 이동이 원인이 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농식품부는 국회의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 처리가 늦어졌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법안 처리 이전에라도 축산농가의 방역 의식을 강화할 대책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추진했는지는 의문이다.
지자체들이 신속하게 구제역 여부를 확진할 수 있도록 시설·인력을 지원해야 한다는 가축방역협의회의 권고에 농식품부는 미온적으로 대응했다.
농식품부는 이날 유정복 장관 주재로 긴급 가축방역협의회를 열어, 구제역 감염 지역을 반지처럼 둘러싸는 방식의 ‘링 백신 접종’(Ring Vaccination)을 하기로 방침을 확정했다. 경북 안동과 경기 북부의 몇몇 지역에서 발생 농가 10㎞ 반경 안 가축들에게 백신 접종을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 링 백신 접종을 한 차례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백신 접종 중단 뒤 6개월이 지나야 구제역 청정국 지위 회복을 신청할 수 있게 된다.
정부의 백신 접종 방침에 일부 축산단체장들은 이날 가축방역협의회에서 강하게 반발해 마지막까지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백신 접종 이후에도 구제역이 퇴치되지 않을 수 있으며, 국산 축산물의 소비가 위축되고 청정국 지위 회복이 어려워지는 점 등을 우려했다. 농식품부도 이달 초 이런 백신 접종 부작용을 밝힌 자료를 배포한 바 있다.
이날 강원 평창군 대화면과 화천군 신내면에서도 구제역 감염이 확진됐으며, 매몰처분된 가축은 22만4605마리에 이르렀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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