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접종 약될까 독될까
구제역 3개 시·도 넘어 ‘전국확산 차단’ 절박
효과 없을땐 해마다 백신접종 악순환 빠져
축산물 수입 막을 위생검역장치도 무력화
구제역 3개 시·도 넘어 ‘전국확산 차단’ 절박
효과 없을땐 해마다 백신접종 악순환 빠져
축산물 수입 막을 위생검역장치도 무력화
농림수산식품부가 백신 접종 결정을 내린 것은 ‘상황이 최악에 빠졌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시간을 더 끌다가는 구제역이 3개 시·도를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절박감이 깔려 있다. 하지만 부작용과 예산 부담을 우려해, 가장 강도가 약한 ‘링 백신 접종’ 방침을 정했다.
■ 링 백신 접종이란? 구제역 발생 농가 주변의 가축을 매몰하는 조처만으로는 방역의 한계에 봉착했다. 초동대응에 실패하면서 수많은 구멍이 뚫렸고, 촘촘한 그물망을 엮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부는 백신 접종 가운데서도 저강도인 ‘링 백신 접종’을 선택하고는 그마저도 가장 소극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이미 구제역이 휘젓고 지나간 일부 지역 주변 10㎞를 대상으로 최소한의 2차 감염을 막는 처방인 것이다. 해당 지역 가축을 매몰처분하지 않는다는 방침도 밝혔다. 부작용도 덜하겠지만 기대효과도 가장 미미한, 말 그대로 ‘어중간한’ 선택이다.
올해 링 백신 접종을 시행한 일본은, 해당 지역 가축을 차근차근 매몰처분하는 방식을 시행했다. 비용이 많이 드는 부담이 있지만, 구제역을 강력하게 차단하면서도 석달 뒤 청정국 지위 회복을 신청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 백신, 왜 문제인가? 백신을 접종받은 가축은 구제역 바이러스의 보균자가 되고, 해당 국가는 구제역 발생국으로 분류된다. 다시 구제역 청정국이 되려면 백신 접종 뒤 6개월~1년 이상 구제역 추가 발생이 없어야 한다. 백신을 맞은 가축은 구제역을 옮기는 구실을 할 수 있다. 백신 접종을 한 뒤에 해당 지역 안의 가축을 매몰처분하는 것은, 백신 접종만으로는 구제역 전파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이 한 해만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문제점도 있다. 백신 접종 뒤에도 구제역이 발생해 해마다 백신 접종을 되풀이해야 하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구제역 상습발생국’으로 전락할뿐더러, 매년 백신 접종을 하는 예산 부담은 매몰처분 때보다 더 커질 수 있다.
축산업계에서는 백신 접종으로 우리나라가 장기간 구제역 발생국으로 분류되면, 외국의 값싼 축산물 수입을 막을 수 있는 위생검역 장치가 무력화한다는 점을 가장 우려한다. 후진국은 대부분 구제역 발생국이어서, 지금까지는 구제역 발생국의 축산물을 규제할 수 있는 위생검역 장치를 활용해 값싼 축산물 수입을 통제할 수 있었다. 우리가 구제역 발생국이 되면 구제역 발생국이란 이유로 수입을 제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백신 접종한 대만 축산업은? 대만은 1997년 구제역 발생 초기에 3천만개의 백신을 접종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그러나 구제역은 근절되지 않았고, 1천만개의 추가 백신을 접종한 뒤에야 사태를 진화할 수 있었다. 그사이에 1070만마리에 이르던 돼지 가운데 400만마리가량이 매몰됐으며, 돼지고기 생산량의 40%를 일본으로 수출하던 대만의 양돈사업 기반이 붕괴되고 말았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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