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가 되려고 밴드를 만든 태봉고 학생 6명이 한 학기 동안 연습한 연주 솜씨를 교사·학생들 앞에서 선보이고 있다. 창원 태봉고등학교 제공
경기대명고 개교 뒤 전국 4곳 설립·추진
하위5% 학생 위한 맞춤형교육 큰 호응
대기자들도 줄줄이…정부 지원은 미약
하위5% 학생 위한 맞춤형교육 큰 호응
대기자들도 줄줄이…정부 지원은 미약
“이 학교가 아니었으면, 이미 학교를 떠났겠죠.”
올해 2월 경기 수원의 공립 대안고교인 경기대명고를 졸업할 최재창(18)군의 꿈은 사진가다. 지난해 ‘전국 학생 사진 공모전’에서 환경부 장관 대상을 받은 최군은 1월에 있을 한 대학 사진학과의 최종 실기시험을 기다리고 있다. 전문계 고교에 진학했던 최군은 학교 적응을 못해 1학년 때 이 학교로 전학온 이른바 ‘부적응 학생’이었다. 최군은 “중학교 때부터 ‘삐딱선’을 타 여러 차례 잘릴 뻔했다”며 “이 학교는 내게 사진을 통해 인생의 갈 길을 알려줬고 내게 참 많은 변화를 준 곳”이라고 뿌듯한 듯 말했다.
학교를 뛰쳐나가는 학생들이 해마다 늘어나는 가운데,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공립 대안 중·고교의 설립이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교육 당국마저 외면한 ‘성적 하위 5%’ 학생들을 껴안으려는 ‘맞춤형 교육’에 힘써오면서, 높은 입학 경쟁률을 보이는가 하면 전학 대기자들이 나오는 등 차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2일 전국 시·도교육청의 말을 종합하면, 2002년 경기도교육청이 국내 첫 공립 대안고교인 대명고를 개교한 데 이어, 지난해 3월 경남도교육청이 창원에 기숙형 공립 대안고인 태봉고를, 전북도교육청은 전북 정읍에 중학교로는 첫 공립 대안학교인 동화중학교를 개교했다. 전남도교육청도 내년에 곡성군 옛 목사동중을 증·개축해 공립 대안고를 열고, 2013년엔 강진군 옛 군동중을 공립 대안중학교로 탈바꿈하는 방안을 각각 추진중이다.
경기대명고는 경기 남부지역 학교 부적응 학생들이 해마다 40명 입학한다. 30%가량은 중학교 시절 각종 비행으로 보호관찰 대상이었고, 30%가량은 학비 보조를 받을 만큼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개교 이래 8년 동안 21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이 가운데 120명은 대학에, 41명은 직업을 찾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이 학교 정진수 교장은 “상위 5%를 위한 ‘귀족형 자율학교’와 달리 우리는 하위 5%의 부적응 학생과 특기·적성에 몰입하려는 학생을 위한 자율학교”라며 “이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이 뒷받침된다면 이들 역시 어엿한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개교 1년을 보낸 경남 창원의 태봉고는 올해 45명 입학 정원에 121명이 지원해 2.69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정원이 40명인 전북 정읍의 동화중은 15명의 학생이 전학 대기 중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집계를 보면, 고교생 가운데 학업 중단 학생은 2007년 2만7930명, 2008년 3만2943명, 2009년 3만4450명으로 최근 3년 동안 9만5323명이나 된다. 날마다 87명이 학교를 그만둔 셈이다.
일선 교사들은 정부와 교육 당국의 ‘성적 상위 학생’들에 대한 투자와 달리, ‘하위 5%’의 지원은 미약하다고 지적한다. 정진수 경기대명고 교장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140만원 되는 등록금도 버거운 학생들이 방과후에 ‘알바’를 나가곤 한다”며 “이런 여건에서 지속적인 배움 기회를 놓치고 이 학교마저 떠나는 학생들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현재 국내 대안교육을 하는 곳은 영광 영산 성지고, 성남 이우학교, 산청 간디학교 같은 민간 대안학교들이 여럿 있다. 이런 대안학교 말고도 장·단기 위탁교육을 하는 민간 대안교육단체들이 일찍부터 등장해 학교 부적응 학생들을 껴안아왔다.
이런 영향으로 지난해 교과부와 시·도교육청이 나서 위스쿨(Wee School)·위센터(Wee Center) 등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위센터가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학생들을 맡는 반면, 위스쿨은 최장 3년까지 맡는 장기 위탁교육기관이다. 강인식 경기도교육청 대안교육 담당 장학사는 “부적응 또는 특기·적성 몰입형 학생들도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일반 시민으로 성장할 권리가 있으며 이 일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수원 광주/홍용덕 정대하 기자 ydhong@hani.co.kr
기숙형 ‘창원 태봉고’ 문제아 학교요? ‘행복교육’ 학교입니다 ‘획일학습’ 이탈학생들 한반에
올레수업 등 ‘꿈찾는 여정’ 호평 수원 대명고에 이어, 고교로는 두번째 공립 대안학교로 지난해 3월 문을 연 경남 창원시 태봉고등학교가 지역민의 기대를 모으며 뿌리를 쑥쑥 내리고 있다. 한 학급 15명씩 세 학급 45명을 받아들여 출발했으나, 전학·휴학 등으로 4명이 빠지고 6명이 전학을 와 현재 전교생은 47명이다. 올해 신입생도 45명을 뽑을 예정인데, 121명이 지원해 2.69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입시교육 대신 학생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선언한 여태전 교장은 신입생을 선발할 때 학부모도 면접한다. 여 교장은 “자유로운 학습 희망자, 문제아, 공부에 흥미를 잃은 학생을 고루 섞어서 뽑았다”며 “좋은 아이들만 골라서 뽑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것은 모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안학교는 ‘문제아 학교’라는 편견이 아직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동욱(17)군은 “태봉고에 진학하겠다고 했더니, 이제 갓 생기는 학교인데도 중학교 선생님까지 ‘깡패 학교’라며 좋지 않게 이야기하셨다”며 “하지만 1년을 다녀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고, 내 스스로 좋은 학교를 만들어간다는 자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학교의 중요 사안은 전교생과 모든 교사가 참석하는 공동체회의에서 결정한다. 회의는 총학생회장이 이끌며, 학생도 교사도 한 표씩 투표권을 갖는다. 공동체회의는 흡연 금지 등 규율을 정하고, 5단계 벌칙도 만들었다. 김경환 총학생회장은 “새로 생긴 학교라 할 일이 무척 많지만, 우리 모두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자긍심을 느낀다”며 “태봉고에 입학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전교생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여 교장도 기숙사에서 함께 지낸다. 밤 11시20분 취침시간이지만, 학습방은 새벽 1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을 일깨워 조화롭게 함께 사는 법을 배우려고 지난 5월엔 전교생이 제주도 올레 110여㎞를 걷고 한라산을 등반하는 이동수업을 했고, 지난 10월에는 지리산 종주를 했다. 오는 4월에는 보름 일정으로 네팔 산악트레킹을 떠날 예정이다. 태봉고는 대학 입시교육 대신 학생들이 각자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인턴십을 통한 학습’ 활동에 주력한다. 모든 학생에겐 어드바이저(담당 교사)와 멘토(외부 전문가)가 있다. 학생들의 꿈은 제빵사, 한의사, 건축가, 음악치료사, 프로듀서, 가수 등 다양하다. 학생들은 멘토를 만나고 현장을 방문하는 등 주마다 두 차례 6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각자 블로그에 진행상황을 기록한다. 학기 말에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1인당 15분씩 결과와 계획을 발표한다. 여 교장은 “입학 때 명확한 꿈을 갖고 있던 학생은 4~5명에 불과했는데, 스스로 고민하고 탐색하는 과정을 거쳐 이제는 모든 학생이 자신의 꿈을 이루려 힘쓰고 또 새로운 꿈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최상원 기자 csw@hani.co.kr
한학급 20명 ‘정읍 동화중’ 전학 한달 뒤 아이가 밝아졌어요 까칠했던 학생들 입학 뒤 변화
첫 공립 대안중…소통에 역점 지난해 3월엔 전북 정읍시 태인면에 중학교로는 첫 공립 대안학교인 동화중이 문을 열었다. 폐교된 옛 태인여중이 탈바꿈한 것이다.
정원은 학년당 40명(20명씩 2학급)이다. 개교 때 33명이 입학했는데 1학기에 7명이 전학왔다. 15명이 이 학교에 전학하려고 대기중이다. 곧잘 욕설을 하며 거칠던 아이들이 이 학교에선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는 소문이 난 때문이다.
“학교에서 공부하라고 스트레스를 주지 않아요. 체험학습을 할 때가 많아 즐겁고요.” 지난해 6월 부산에서 전학온 이아무개(13)군은 등교하면 재미있다고 했다. “선생님들도 잘 이해해주고 챙겨준다”며, 이전에 다니던 학교와 다른 점을 꼽았다. 이군 어머니(38)도 만족스럽다고 했다. “아이가 처음에는 ‘다 똑같지, 뭐’ 하면서 마음을 닫고 어두웠는데, 전학 1개월 뒤부터 밝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담배까지 피우며 까칠했던 어린 여학생도 차츰 마음을 누그러뜨리더라고 했다.
이렇게 일반 학교에 다녔으면 ‘중도탈락’할 수도 있었을 아이들이 나름대로 꿈을 찾아가도록 돕자는 것이 이 학교 설립 취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북지부장 출신 박병훈 교장은 “성적 상위 5% 아이들도 중요하지만, 하위 5% 아이들도 소중하다”고 말했다.
“교육이라는 것이 곧바로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기는 어렵습니다. 3년 동안 따뜻하게 보살피면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기초를 다지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일반 교육과정에 더해 현장체험 학습, 인성교육, 소질·적성 계발교육에 중점을 둔다. 일반 학교의 입시 위주 교육보다는 학생들의 개성을 살리는 ‘전인교육’에 힘쓰려 한다는 것이다. 오전엔 일반 교과목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텃밭 가꾸기, 동물농장 등 체험학습, 예체능교육 등을 한다. 저녁 땐 1시간쯤 검도·농구·댄스·독서 같은 취미 동아리 활동도 한다. 부산서 전학온 이군은 석달 전부터 트럼펫 배우는 재미에 빠졌다며 이번 겨울방학 때 음악캠프에 참가했는데 참말로 좋았다고 했다.
한 학급 35~40명쯤 되는 일반 학교와 달리 동화중은 한 학급 학생이 20명이다. 교사와 충분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교사는 “아이들이 개성이 강한 편이어서, 낱낱이 상대하기가 벅찰 때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교사들은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는다. 이군 어머니도 “선생님들이 아이를 끌어안아주니까 변하는 것 같다”고 했다.
공모제로 뽑힌 박 교장은 종전 교장실을 학생 상담실과 교사 휴게실로 바꿨다. 자신은 교무실에서 교사들과 함께 일한다. 박 교장은 “여러 민간 대안학교들이 귀족화한 경향이 있고, 입시 위주로 변해 초기 정신을 훼손한 측면이 있다”며 “공립 대안학교 정착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반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 가운데 저소득층, 조부모·한부모 가정, 다문화가정 등 소외계층 학생을 우선 선발한다. 정읍/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기숙형 ‘창원 태봉고’ 문제아 학교요? ‘행복교육’ 학교입니다 ‘획일학습’ 이탈학생들 한반에
올레수업 등 ‘꿈찾는 여정’ 호평 수원 대명고에 이어, 고교로는 두번째 공립 대안학교로 지난해 3월 문을 연 경남 창원시 태봉고등학교가 지역민의 기대를 모으며 뿌리를 쑥쑥 내리고 있다. 한 학급 15명씩 세 학급 45명을 받아들여 출발했으나, 전학·휴학 등으로 4명이 빠지고 6명이 전학을 와 현재 전교생은 47명이다. 올해 신입생도 45명을 뽑을 예정인데, 121명이 지원해 2.69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입시교육 대신 학생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선언한 여태전 교장은 신입생을 선발할 때 학부모도 면접한다. 여 교장은 “자유로운 학습 희망자, 문제아, 공부에 흥미를 잃은 학생을 고루 섞어서 뽑았다”며 “좋은 아이들만 골라서 뽑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것은 모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안학교는 ‘문제아 학교’라는 편견이 아직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동욱(17)군은 “태봉고에 진학하겠다고 했더니, 이제 갓 생기는 학교인데도 중학교 선생님까지 ‘깡패 학교’라며 좋지 않게 이야기하셨다”며 “하지만 1년을 다녀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고, 내 스스로 좋은 학교를 만들어간다는 자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학교의 중요 사안은 전교생과 모든 교사가 참석하는 공동체회의에서 결정한다. 회의는 총학생회장이 이끌며, 학생도 교사도 한 표씩 투표권을 갖는다. 공동체회의는 흡연 금지 등 규율을 정하고, 5단계 벌칙도 만들었다. 김경환 총학생회장은 “새로 생긴 학교라 할 일이 무척 많지만, 우리 모두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자긍심을 느낀다”며 “태봉고에 입학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전교생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여 교장도 기숙사에서 함께 지낸다. 밤 11시20분 취침시간이지만, 학습방은 새벽 1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을 일깨워 조화롭게 함께 사는 법을 배우려고 지난 5월엔 전교생이 제주도 올레 110여㎞를 걷고 한라산을 등반하는 이동수업을 했고, 지난 10월에는 지리산 종주를 했다. 오는 4월에는 보름 일정으로 네팔 산악트레킹을 떠날 예정이다. 태봉고는 대학 입시교육 대신 학생들이 각자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인턴십을 통한 학습’ 활동에 주력한다. 모든 학생에겐 어드바이저(담당 교사)와 멘토(외부 전문가)가 있다. 학생들의 꿈은 제빵사, 한의사, 건축가, 음악치료사, 프로듀서, 가수 등 다양하다. 학생들은 멘토를 만나고 현장을 방문하는 등 주마다 두 차례 6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각자 블로그에 진행상황을 기록한다. 학기 말에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1인당 15분씩 결과와 계획을 발표한다. 여 교장은 “입학 때 명확한 꿈을 갖고 있던 학생은 4~5명에 불과했는데, 스스로 고민하고 탐색하는 과정을 거쳐 이제는 모든 학생이 자신의 꿈을 이루려 힘쓰고 또 새로운 꿈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최상원 기자 csw@hani.co.kr
한학급 20명 ‘정읍 동화중’ 전학 한달 뒤 아이가 밝아졌어요 까칠했던 학생들 입학 뒤 변화
첫 공립 대안중…소통에 역점 지난해 3월엔 전북 정읍시 태인면에 중학교로는 첫 공립 대안학교인 동화중이 문을 열었다. 폐교된 옛 태인여중이 탈바꿈한 것이다.
전북 정읍 동화중학교 학생들이 이번 겨울 음악캠프에서 자신들이 고른 악기로 함께 연습하고 있다. 정읍 동화중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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