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양성 판정을 받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2리 삼양목장 들머리에서 9일 오전 방역요원들이 출입문을 닫은 채 차량을 소독하고 있다.
평창/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매몰 우선’ 지침에 접종시기 놓쳐
백신 자체의 불완전성도 우려 키워
백신 자체의 불완전성도 우려 키워
구제역 확산을 자초한 정부의 가장 큰 실패는 ‘뒷북’ 예방약(백신) 접종이었다. 경북에서 경기와 강원으로 확산된 뒤에야 마지못해 소규모 백신접종 카드를 꺼냈고, 그 뒤로는 계속 상황을 뒤쫓아가기 바빴다. 돼지를 빼놓았다가 100만마리를 ‘생매장’으로 내몰았고, 뒤늦게 돼지 접종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새끼돼지는 미뤄놓았다.
■ 백신 전환 매뉴얼 있었나?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구제역 방역 제1지침은 ‘신속하고 과감한 매몰처분’이었다. 지난해 1월과 4월의 두차례 구제역을 그렇게 이겨냈다. 비슷한 시기에 구제역 홍역을 치렀던 일본의 언론들은 한국의 매몰처분 방식을 벤치마킹해 보도하기도 했다. 문제는 매몰처분이 한계에 부닥쳤을 때, 어느 단계에서 백신접종을 들어간다는 구체적인 매뉴얼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매몰처분은 국지적 구제역의 효과적 대응수단이기는 하지만, 이번과 같은 전국적 구제역 상황에서는 철저하게 무력함을 드러냈다. 환경 중시와 동물복지 여론이 높아지면서, 산짐승을 땅에 묻고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일을 더는 저지르기 힘들게 됐다.
■ 백신 차선책, 알고 있었나? 정부가 백신 접종 결단을 내린 것은 지난해 12월25일이었다. 구제역이 확산되고 근 한달이 지난 뒤였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대목은 유정복 장관과 농식품부 수뇌부가 백신 접종의 장단점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는지이다.
농식품부가 백신 접종을 객관적으로 검토한 시기는 12월 중순 무렵, 국무회의에서 꼭 매몰처분만 해야 하느냐는 지적을 받고 난 뒤였다. 그전까지 농식품부의 공식·비공식 입장은 백신은 최후의 극약처방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농식품부의 백신 접종이 차선책이 될 수 있는지 진작에 보고받았더라면, 선제적 대응이 더욱 빨랐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찔끔찔끔 백신 확대, 왜? 백신 정책으로 선회한 이후에는 ‘찔끔찔끔’ 대응이 문제였다. 선제적 예방 효과를 내야 하는 백신 접종에서 뒷북만 때린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가장 큰 이유는, 백신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백신 접종의 효과가 불완전하고, 해당 가축의 사후관리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마음에 내키지 않은 정책을 시도한 데 따른 소극성도 작용했을 수 있다. 현실적 문제는 백신의 보유 물량이었다. 백신 접종 결정 당시, 비축분은 15만마리 분량(2차례 접종 기준)에 불과했다. 과감하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달 말까지 한껏 늘려도 400만마리 분량을 넘지 못한다. 전국의 소만 접종할 수 있는 물량이다. 남은 돼지는 900만마리에 이른다.
■ 사후관리와 백신효과는? 농식품부는 지난달 8일 백신을 맞은 가축이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캐리어(Carrier) 구실을 하고, 청정국 지위 회복이 어려워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백신 접종 방침을 결정하면서 내놓은 지난달 23일 자료에는 청정국 지위 회복이 3개월 늦어질 뿐이고, ‘캐리어’도 가려내 사후관리할 수 있다고 엇갈리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사람에게 접종하는 백신과 달리, 구제역 백신은 상당히 불완전한 것으로 전문가들 사이에 알려져 있다. 바이러스는 1%만 뚫려도 한순간에 전국으로 퍼질 수 있다. 무엇보다 사람이 맡아야 하는 사후관리의 구멍에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축산농가도 현장의 공무원들도, 전혀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지금의 상황을 가장 불안해하는 것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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