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하리 여주자영농업고등학교 실습장 정문에서 이 학교 교직원이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을 막기 위해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이 학교는 구제역이 번지면서 실습용으로 쓰던 돼지와 사슴·염소 등 2500여마리를 최근 살처분하고 개학은 물론 졸업식까지 취소했다.
소·돼지·사슴 살처분 ‘눈물’ 개학 늦추고 졸업식도 취소
교사들만 남아 방역작업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길…”
교사들만 남아 방역작업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길…”
양복을 벗어던진 교사들은 방역복을 입고 분필 대신 소독기를 들었다. 학교로 가는 길목엔 방역초소가 서 있고 통나무로 바리케이드가 쳐져 삼엄했다. 개학과 졸업식 준비로 북적거려야 할 교정에 학생은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학생 400여명이 가득채웠을 기숙사에도 방마다 침대와 빈 책상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9일 오전 경기도 여주군 여주자영농업고등학교의 풍경은 적막했다. 농업고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농업 생산기반을 갖춘 이 학교마저 구제역 광풍은 비껴가지 않았다.
교사와 선후배 학생들이 10년 가까이 자식처럼, 동생처럼 길러온 사슴 122마리는 열흘 전 살처분됐다. 시도때도 없이 꿀꿀거리며 밥 달라고 떼쓰던 돼지 2388마리도 사슴보다 9일 앞서 교내 목초지에 묻혔다. 소도 무사할 리 없다. 일찌감치 예방약(백신) 접종을 했지만, 150마리 가운데 10여마리가 차례로 구제역에 감염돼 매몰처분됐다. 이 학교 기획부장 김성하 교사는 “학생들도 못 오고, 많은 가축들을 파묻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며 허탈해했다.
구제역 때문에 개학은 3월2일로 연기됐다. 따라서 재학생들의 종업식도 없다. 뿐만 아니다. 정든 교정을 떠나는 3학년 학생 142명이 석별의 정을 나눌 제60회 졸업식도 아예 취소됐다. 졸업장과 상품 등은 우편으로 받게 될 예정이다.
졸업반인 김황연(19·경기 화성시 서신면)군은 “구제역으로 일찍 방학해 지난해 12월24일 기숙사에서 나왔지만, 부모님이 소를 기르셔서 집에서도 갇혀 지내고 있다”며 “졸업식도 못하게 돼 아쉽기만 하다”고 서운해했다. 학교 쪽은 구제역이 잠잠해지면 오는 5~6월 ‘만남의 날’을 잡아 아쉬움을 달래줄 계획이다. 기숙사 사감 손응태 교사는 “구제역 때문에 짐도 싸지 못한 채 집으로 간 학생이 많아 필요한 물건을 택배로 보내주고 있다”며 “빈 방이 하루빨리 아이들로 채워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병순 교장은 “영농후계자 양성기관인 우리 학교에는 현재 소 말고도 닭 3만여마리가 있는데, 교사 70여명이 하루 12시간씩 돌아가며 방역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학생과 교사들 모두 상실감이 매우 크지만,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여주/글·사진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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