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증상 가축들만 파묻어
며칠 모은뒤 매몰 ‘방역 구멍’
며칠 모은뒤 매몰 ‘방역 구멍’
정부가 예방약(백신) 접종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구제역 의심 증상이 나타난 가축만을 매몰하는 부분 매몰 방침으로 바꾼 뒤, 구제역 방역은 더욱 부실해지고 매몰 가축이 줄지는 않는 등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구제역에 감염된 돼지를 한꺼번에 모아 매몰하겠다며 살처분한 뒤 열흘 가까이 방치한 사례도 있었다.
11일 경기도 북부지역 축산농가 등의 말을 들어보면, 2차 백신 접종을 시작한 지난달 말께 연천군 연천읍·신서면, 파주시 적성면의 젖소농장에서 구제역이 발병해 살처분한 젖소를 1~2마리씩 축사 밖에 모아뒀다가 한꺼번에 매몰한 사실이 확인됐다. 한 축산농민은 “백신 접종 뒤 구제역이 발생하면 2~3일 간격으로 잇따라 발병하는 것이 보통”이라며 “방역 공무원들이 ‘날마다 1~2마리씩 묻기에는 장비·인력 동원에 한계가 있다’며 2~3일씩 모아두게 한 뒤 매몰했다”고 말했다. 이어 “농장 인근 주민들이 항의하자 요즘은 소형 장비를 동원해 발병 즉시 매몰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천군의 한 농민은 “방역 공무원들이 감염된 가축을 살처분한 뒤 축사 밖에 비닐로 덮어둔 채 2~3일씩 방치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경북도 가축방역반 공무원은 “돼지농장에선 부분 매몰한 뒤에도 시간차를 두고 양성 반응이 나오고 있다”며 “정부가 매몰을 최소화하라고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일해보면 결국 한 농장의 돼지는 다 묻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과는 마찬가지인데, 장비 기사와 수의사 등이 여러차례 드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감염·전파 우려를 키울 뿐 아니라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충북 괴산군의 한 돼지농가도 지난달 28일 10마리를 묻은 데 이어, 이달 2일과 6일 등 모두 세 차례 구제역이 발생해 매몰작업을 벌였다.
농림수산식품부 등 정부 방역 당국의 ‘부분 매몰처분 방침’에 불만을 터뜨리는 양돈 농가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강원도 화천의 한 농장주는 “나중에 출하 단계에서는 다시 혈청검사를 해서 감염된 돼지들을 모두 매몰한다는 방침을 들었다”며 “출하 단계에서 어차피 매몰할 수밖에 없다면, 비싼 사료를 더 먹일 필요 없이 처음 발생 때 모두 매몰처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돼지가 구제역에 걸린 농장이라면 임상증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모두 구제역에 감염됐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지금의 부분 매몰처분 정책은 농민들을 이중으로 죽이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경북 영주의 농장주도 “일부만 매몰하다 보니 구제역이 이어지고 이동통제 기간도 길어져 출하를 70일 이상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돼지 4000마리를 키울 수 있는 우리 농장에 돼지가 5000여마리로 늘어나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다”고 하소연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박경만 박주희 오윤주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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