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비 뒷면에 이광수 시 ‘해운대에서’
해운대구청 고수…시민단체 거센 반발
해운대구청 고수…시민단체 거센 반발
부산 해운대구가 관광명소인 달맞이동산을 안내하는 표석 뒷면에 실린 친일작가 춘원 이광수의 시를 지우지 않자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는 지난 1일 달맞이동산에서 ‘친일작가 이광수시비 삭제’ 서명운동을 벌였다고 3일 밝혔다. 부산참여연대는 앞으로 한 차례 더 서명운동을 벌인 뒤 배덕광 해운대구청장한테 시비 철거 여부를 묻는 공개 질의문을 보낼 예정이다. 또 해운대구 정문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반일단체 등과 함께 시비를 철거하기 위한 다양한 연대활동을 펼치기로 했다.
달맞이동산 표석은 지난 1983년 7월 해운대구가 달맞이길을 정비하면서 만든 달맞이동산에 세워졌다. 앞면에 ‘달맞이동산’이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 이광수의 시 ‘해운대에서’가 새겨져 있다.
이 표석의 철거가 처음 거론된 것은 2007년이다. 한 시민이 <국제신문>에 ‘해운대에 친일파 이광수 시비가 웬말?’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자 “일본강점기 대표적인 친일 문인의 시를 지역 대표 명소에 그대로 두는 것은 옳지 않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해운대구는 이듬해 1월1~10일 구 누리집을 통해 이광수 시비 철거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벌였다. 당시 설문조사는 한 사람이 계속해서 참여할 수 있게 돼 있었고, 마감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참여자가 비정상적으로 급증하는 등 여론조사의 신뢰성이 문제가 됐으나 해운대구는 철거 반대가 더 많았다며 시비를 철거하지 않았다.
3년 만에 이광수 시비 철거 논란이 일자 해운대구는 “지명을 알리는 표석에 해운대와 달맞이언덕을 가장 잘 표현한 시를 채택한 것이지 이광수 시인을 예찬하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다”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 “철거 여부는 여론을 좀더 수렴해서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해운대구 구민인 신아무개씨는 “일본강점기 친일을 청산하는 것은 해방 66년의 당연한 결정이지 인기 연예인의 여론조사식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며 “우리 어른들이 이 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또다시 우리의 자식 세대들에게 멍에를 안겨주고,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아픈 역사가 대를 이어 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이광수는 1917년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인 <무정>을 발표했다. 한때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으나 1939년 친일 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을 맡았으며, 일본의 태평양전쟁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등 친일행위를 벌였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면서 친일인사에 그를 포함시켰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