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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백로떼 노니는 곳에 웬 송전탑 평창 학마을 ‘목빠지는 승전보’

등록 2011-03-16 21:35

1심 패소…항소심 결과 촉각
황조롱이 등 서식확인 변수로
강원 평창군 용평면 재산3리는 ‘학마을’로 불린다. 해발 1173m 금당산 자락에 자리잡은 마을은 평균 고도만도 700m에 이르는 고랭지다. 동리 한가운데엔 ‘황새봉’이 자리를 잡았고, 뒤편으론 오대천과 장전계곡이 흐른다. 필리핀 루손 섬에서 3600㎞ 이상을 날아오는 왜가리과 철새들이 예부터 재산리를 서식지로 삼아온 이유다.

16일 이 마을 주민 정설교(54)씨는 “해마다 3월 초 왜가리를 시작으로 중백로·해오라기 등 철새 300여마리가 찾아와 4~6월 번식을 하고, 말복 무렵 남쪽으로 날아가곤 한다”며 “백로가 선비를 닮았다고도 하고, 새들이 찾아오면 부자마을이 된다고도 해서 예부터 봄철 농삿일을 시작하기 전에 제례를 올려왔다”고 말했다.

재산리 주민들의 지리한 싸움은 지난 2004년 평창군이 이 마을 철새도래지 인근에 레미콘 공장 신설을 허가하면서 시작됐다. 공장은 주민이 반발하고, 이 지역이 야생동식물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던 터라 실제로 들어서진 못했다. 그러나 군이 재산리 일대에 대한 야생동식물보호구역 재지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한전이 송전탑을 세우겠다고 나섰다.

‘일사천리’였다. 2009년 8월 백로가 떠난 빈 자리에서 철탑공사가 시작됐다. 주민들은 트랙터로 공사를 저지했지만 그해 12월 거대한 송전탑이 완공됐다. 이듬해 백로들은 대대로 알을 낳고 키우던 아름드리 소나무 대신 거대한 철탑과 마주했다. 정씨는 “바람이 불면 ‘앵앵, 콰다닥’ 괴상한 소리가 났고, 그럴 때마다 놀란 백로 떼가 하늘로 날아오르곤 했다”며 “날이 흐리고, 안개가 끼거나 천둥번개가 치면 위험을 느껴 밭일도 나가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새들도, 사람도 살기 어려운 땅으로 변한 고향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은 2010년 송전탑 건설 허가를 내준 지식경제부 장관을 상대로 ‘전원개발사업실시계획 승인처분 무효확인소송’을 냈다. 법무법인 정평 하주희 변호사는 “송전탑 건설을 승인해줄 때 국토·자연환경 보전을 위한 제반 규정을 제대로 지켰는지가 핵심 쟁점”이라고 말했다. 1심에선 패소했다. 주민들은 항소했다.

지난 1월 법원에서 증언을 한 바 있는 조류학자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는 “재산리에 가보니 송전탑 설치에 앞서 (한전 쪽이) 실시한 조사에선 없다고 했던 천연기념물이 까막딱따구리·수리부엉이·소쩍새·올빼미·황조롱이·원앙이 등 7종이나 서식하고 있었다”며 “조금만 옆으로 움직이면 되는데도, 백로 번식지 한가운데다 철탑을 세운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고등법원 제3행정부(재판장 이대경)는 17일 재산리 송전탑 소송에 대한 변론을 종결할 예정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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