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초 760원서 1100원대로
난방 않는 작목으로 바꾸기도
난방 않는 작목으로 바꾸기도
“몰러~, 난. 맘대로 하라 그래~!”
여유인가? 아닌 것 같다. 연방 흘리는 웃음소리는 컸지만, 얼굴은 잔뜩 굳은 채였다. 지난 23일 오전 의암호가 지척인 강원도 춘천시 서면 서상리 농장에서 만난 이재환(56)씨는 “지난해 채소값 폭등으로 깨달은 게 없다면,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1만평 가까운 땅에 올린 비닐하우스 53개 동에서 1년 내내 토마토 농사를 짓는다. 1개 동에 700주가량의 다수확 품종 ‘메디슨’을 심는다. 11월에 파종한 토마토는 5월부터 출하하고, 7월에 모종을 옮겨 심은 토마토는 9월부터 시장에 낸다.
땅속 난방과 온풍기 10개로 하루 16만칼로리의 열량을 내는 그의 하우스에서 지난 2월 쓴 기름은 하루 평균 5천ℓ다. 이씨는 “기름값이 치솟아 품질이 떨어질 것을 각오하고 파종과 정식 시기를 2주가량이나 늦췄는데, 떨어질 걸로 기대했던 기름값이 되레 올라버렸다”며 헛헛하게 웃었다.
기름값의 절반가량은 세금이다. 쌀과 채소를 키우고, 고기를 잡는 농민과 어민에게 정부는 농사·고기잡이에 필요한 일정량의 ‘면세유’를 공급한다. 하지만 천장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국제유가 탓에 면세유도 덩달아 치솟으면서 농어민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하우스 난방용 기름 소비에다, 본격적인 농사철을 앞두고 농기계를 이용해 경지 정비를 해야 하는 2~4월에 한 해 면세유 배정량의 절반가량이 소비된다.
제주 조천읍 신촌리에서 24년째 2000여평의 꽃농사를 짓고 있는 안충석(65)씨는 “1년 전과 견주면 면세유 값이 50% 가까이 뛴 것 같다”고 말했다. 시설 백합은 대개 11월 초부터 이듬해 3월 말까지 면세유로 하우스 온도를 13도 정도로 유지시켜야 한다. 안씨는 “예년에는 겨울철에 10시간 안팎을 가온했는데, 올겨울엔 13~14시간 가온했다”며 “지난해엔 1ℓ에 760원쯤 했던 면세유가 사흘 전에는 1127원까지 치솟았다”고 말했다.
고온성 작물인 멜론을 재배하는 농가들의 어려움은 더욱 크다. 전남 나주시 세지면 시설하우스 5940㎡에서 멜론을 재배하는 강근수(63)씨는 “지난해 12월 초부터 기름만 1000만원어치를 땠는데, 며칠 전 멜론을 출하했더니 1000만원도 받지 못했다”며 “겨울에 난방을 하지 않는 고추 같은 작목으로 전환하거나, 아예 오리 사육을 시작한 농민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춘천 서상리에서 1000평 남짓 토마토 시설재배를 하는 농민 최중수(57)씨는 “파종 시기가 전반적으로 늦춰졌기 때문에 출하 시기도 늦어지거나 한꺼번에 물량이 몰릴 가능성이 높다”며 “출하가 늦어져 가격이 치솟으면 소비자들이 골탕을 먹고, ‘홍수 출하’가 돼 시세가 폭락하면 유통업자들만 배를 불리고, 농민들은 내년 농사를 접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을 비롯한 온 나라 농민단체들이 지난 22일 일제히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해 3월 1ℓ당 780원 하던 면세유가 올해 3월 1100원대로 진입해 영농비가 급등하고 있다”며 “면세유와 비료·농약값 상승 대책을 마련하고 농자재 지원을 확대하라”고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인환 기자, 전국종합 inhwan@hani.co.kr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을 비롯한 온 나라 농민단체들이 지난 22일 일제히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해 3월 1ℓ당 780원 하던 면세유가 올해 3월 1100원대로 진입해 영농비가 급등하고 있다”며 “면세유와 비료·농약값 상승 대책을 마련하고 농자재 지원을 확대하라”고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인환 기자, 전국종합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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