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탄난 뉴타운, 파탄난 서민들
사업진척 얼마나
9년간 237곳중 32곳만 공사…지연 잇따라
경기도는 주민반발 거세지며 ‘백지화’ 바람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던 뉴타운 사업이 서울에서는 10곳 중 8곳이 사업 착공도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태이고, 경기도에서는 자치단체들의 포기 선언이 잇따르며 주민 반발도 날로 거세져 ‘좌초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전국적으로 뉴타운 사업을 벌이는 곳은 82곳 8190만㎡인데, 이 중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전체 뉴타운지구 면적의 73%인 58곳, 6003만㎡가 몰려 있다. 4일 서울시와 경기도의 ‘뉴타운 추진 현황’(지난 1월 기준)을 보면, 서울시는 뉴타운 사업을 시작한 2002년부터 모두 35개 지구 237개 사업구역을 지정했지만, 공사를 시작했거나 끝낸 사업구역은 32개에 불과하다. 서울 뉴타운 사업구역의 205곳(86.5%)이 착공조차 못한 것이다. 조합 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한 구역도 66곳(27.8%)에 이른다. 35개 뉴타운 지구 가운데 착공한 사업구역이 1곳이라도 있는 지구는 은평·길음·왕십리 등 시범뉴타운 3곳을 비롯해 미아·아현·노량진·흑석 등 10개 지구뿐이다. 착공한 사업구역에서도 주민 갈등, 조합 비리, 조합과 시공사 간의 갈등 등으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서대문구 가재울 4구역은 조합원 간 소송으로, 마포구 아현 3구역은 조합장 비리 문제로 사업이 지연됐다. 지난달 분양할 계획이던 성동구 왕십리 2구역은 분양가를 정하지 못해 공사가 중단됐다. 2007년 이후 23개 지구를 지정한 경기도는 4년째인 지난해부터는 지구 지정 해제 등으로 휘청이고 있다. 지난해 9월 군포 금정에 이어, 안양 만안지구가 찬반 주민들의 대립으로 결정 고시를 못 한 채 지구 지정 효력을 잃었다. 평택시는 주민 80%가 반대한 안정지구를 해제했다. 오산시는 주민투표를 거쳐 19개 구역 중 3개 구역을 뺀 나머지 구역의 해제를 추진중이다. 경기도에서는 특히 2006년 뉴타운을 선거공약으로 내건 김문수 경기지사의 취임과 함께 무더기로 추진됐으나, 서울에 견줘 개발이익이 낮아 생존권 박탈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경기 안양·군포·부천·의정부·구리 등에서 주민들의 뉴타운 반대 대책위원회 결성이 이어지고 있고, 부천·의정부에서는 주민들의 시청 장기 점거농성 등 반발 강도도 격해지고 있다. 이주원 ‘나눔과 미래’ 지역정책국장은 “서울지역에선 뉴타운 사업장의 관리처분 인가가 한꺼번에 몰릴 경우 대규모 주택 멸실에 따른 전세대란과 임대료 상승 문제가, 경기도에서는 재정착이 어려운 주민들의 극한적인 반대가 터져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에서 이주·철거를 포함한 관리처분 인가까지 받고 착공을 앞둔 사업구역은 10곳, 관리처분 인가 이전에 사업 시행 인가를 마친 구역은 20곳이다. 지난해 서울에선 재개발 등으로 4만8000여가구분 주택이 철거된 반면, 공급 물량은 2만2000여가구분에 머물러 2만6000여가구분 주택이 부족한 것으로 추산된다. 수원/홍용덕, 김경욱 기자 ydhong@hani.co.kr
왜 이지경 됐나
① 표심 노린 헛공약들 ‘뒤탈’
② 경기 나빠져 분담금 올라
③ 보금자리에 인기 빼앗겨 뉴타운이 곳곳에서 파탄 지경에 이르게 된 데는 역대 선거 때마다 등장한 무책임한 공약 남발과 마구잡이식 지구 지정에 근본 원인이 있다.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과 손쉽게 세수입을 늘릴 수 있는 지역개발의 유혹에 빠진 지방자치단체가 합작해 시민들에게 ‘헛된 꿈’을 심어준 게 비극의 씨앗이다. 뉴타운이 처음 등장한 때는 2002년 10월이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균형개발 촉진을 위한 뉴타운 시범지역으로 은평·왕십리·길음 세 곳을 지정한 뒤 이듬해 11월 아현·가재울 등 2차 뉴타운 12곳을 무더기로 선정했다. 뉴타운 선정 지역에선 집값, 땅값이 뛰면서 부동산시장이 요동쳤다. 반대로 뉴타운에서 탈락한 곳에서는 부동산값이 급락해 소속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의 무능을 탓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뉴타운과 정치권의 ‘잘못된 만남’은 이때부터였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과 경기도 광역·기초자치단체 입후보자들의 공약은 너도나도 뉴타운이었다. 지방선거가 끝난 뒤 김문수 경기지사의 공약에 따라 부천을 시작으로 경기 12개 시에서 23개의 뉴타운이 무더기로 지정됐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서울에서는 뉴타운을 내건 후보가 대거 당선되며 ‘타운돌이’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뉴타운 문제가 터지게 된 계기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부동산 경기 침체였다. 현행 뉴타운 사업은 공공이 도로 등 일부 기반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제외하면, 조합원이 땅을 내놓고 건설사가 공사비를 댄 뒤 분양을 통해 이익을 남기는 민간사업이어서 집값 하락이 최대의 위험 요인이다. 수익성이 떨어질수록 반대로 조합원이 내야 할 분담금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정부가 2009년부터 수도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하면서 입주자 사전예약에 나선 보금자리주택도 뉴타운 사업을 휘청거리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현재 경기권에 하남 미사, 고양 원흥 등 11개 보금자리지구를 지정해 사업을 추진중인데, 자치단체가 지정한 뉴타운에 견줘 위치는 좋고 분양값이 저렴해 뉴타운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게 부동산업계의 평가다. 2009년 10월 사전예약을 받은 고양 원흥지구의 경우 전용면적 60~85㎡ 아파트 분양값이 3.3㎡당 850만원으로 고양시 일대에서 가장 저렴했고, 이 여파로 이듬해 분양에 들어간 원당뉴타운이 미분양 직격탄을 맞았다. 또 지난해 보금자리 부천 옥길지구가 소사뉴타운 바로 옆에서 사전예약을 시작하자 소사뉴타운도 줄줄이 미분양 사태를 겪고 있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연구소장은 “정부는 애초 보금자리주택은 서울 외곽 그린벨트, 뉴타운은 서울과 경기 구도심에 위치해 서로 영향이 없을 것으로 봤지만 현실적으로는 충돌하는 결과가 빚어진 상황”이라며 “뉴타운은 자치단체 소관이라며 나 몰라라 한 정부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9년간 237곳중 32곳만 공사…지연 잇따라
경기도는 주민반발 거세지며 ‘백지화’ 바람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던 뉴타운 사업이 서울에서는 10곳 중 8곳이 사업 착공도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태이고, 경기도에서는 자치단체들의 포기 선언이 잇따르며 주민 반발도 날로 거세져 ‘좌초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전국적으로 뉴타운 사업을 벌이는 곳은 82곳 8190만㎡인데, 이 중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전체 뉴타운지구 면적의 73%인 58곳, 6003만㎡가 몰려 있다. 4일 서울시와 경기도의 ‘뉴타운 추진 현황’(지난 1월 기준)을 보면, 서울시는 뉴타운 사업을 시작한 2002년부터 모두 35개 지구 237개 사업구역을 지정했지만, 공사를 시작했거나 끝낸 사업구역은 32개에 불과하다. 서울 뉴타운 사업구역의 205곳(86.5%)이 착공조차 못한 것이다. 조합 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한 구역도 66곳(27.8%)에 이른다. 35개 뉴타운 지구 가운데 착공한 사업구역이 1곳이라도 있는 지구는 은평·길음·왕십리 등 시범뉴타운 3곳을 비롯해 미아·아현·노량진·흑석 등 10개 지구뿐이다. 착공한 사업구역에서도 주민 갈등, 조합 비리, 조합과 시공사 간의 갈등 등으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서대문구 가재울 4구역은 조합원 간 소송으로, 마포구 아현 3구역은 조합장 비리 문제로 사업이 지연됐다. 지난달 분양할 계획이던 성동구 왕십리 2구역은 분양가를 정하지 못해 공사가 중단됐다. 2007년 이후 23개 지구를 지정한 경기도는 4년째인 지난해부터는 지구 지정 해제 등으로 휘청이고 있다. 지난해 9월 군포 금정에 이어, 안양 만안지구가 찬반 주민들의 대립으로 결정 고시를 못 한 채 지구 지정 효력을 잃었다. 평택시는 주민 80%가 반대한 안정지구를 해제했다. 오산시는 주민투표를 거쳐 19개 구역 중 3개 구역을 뺀 나머지 구역의 해제를 추진중이다. 경기도에서는 특히 2006년 뉴타운을 선거공약으로 내건 김문수 경기지사의 취임과 함께 무더기로 추진됐으나, 서울에 견줘 개발이익이 낮아 생존권 박탈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경기 안양·군포·부천·의정부·구리 등에서 주민들의 뉴타운 반대 대책위원회 결성이 이어지고 있고, 부천·의정부에서는 주민들의 시청 장기 점거농성 등 반발 강도도 격해지고 있다. 이주원 ‘나눔과 미래’ 지역정책국장은 “서울지역에선 뉴타운 사업장의 관리처분 인가가 한꺼번에 몰릴 경우 대규모 주택 멸실에 따른 전세대란과 임대료 상승 문제가, 경기도에서는 재정착이 어려운 주민들의 극한적인 반대가 터져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에서 이주·철거를 포함한 관리처분 인가까지 받고 착공을 앞둔 사업구역은 10곳, 관리처분 인가 이전에 사업 시행 인가를 마친 구역은 20곳이다. 지난해 서울에선 재개발 등으로 4만8000여가구분 주택이 철거된 반면, 공급 물량은 2만2000여가구분에 머물러 2만6000여가구분 주택이 부족한 것으로 추산된다. 수원/홍용덕, 김경욱 기자 ydhong@hani.co.kr
왜 이지경 됐나
① 표심 노린 헛공약들 ‘뒤탈’
② 경기 나빠져 분담금 올라
③ 보금자리에 인기 빼앗겨 뉴타운이 곳곳에서 파탄 지경에 이르게 된 데는 역대 선거 때마다 등장한 무책임한 공약 남발과 마구잡이식 지구 지정에 근본 원인이 있다.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과 손쉽게 세수입을 늘릴 수 있는 지역개발의 유혹에 빠진 지방자치단체가 합작해 시민들에게 ‘헛된 꿈’을 심어준 게 비극의 씨앗이다. 뉴타운이 처음 등장한 때는 2002년 10월이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균형개발 촉진을 위한 뉴타운 시범지역으로 은평·왕십리·길음 세 곳을 지정한 뒤 이듬해 11월 아현·가재울 등 2차 뉴타운 12곳을 무더기로 선정했다. 뉴타운 선정 지역에선 집값, 땅값이 뛰면서 부동산시장이 요동쳤다. 반대로 뉴타운에서 탈락한 곳에서는 부동산값이 급락해 소속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의 무능을 탓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뉴타운과 정치권의 ‘잘못된 만남’은 이때부터였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과 경기도 광역·기초자치단체 입후보자들의 공약은 너도나도 뉴타운이었다. 지방선거가 끝난 뒤 김문수 경기지사의 공약에 따라 부천을 시작으로 경기 12개 시에서 23개의 뉴타운이 무더기로 지정됐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서울에서는 뉴타운을 내건 후보가 대거 당선되며 ‘타운돌이’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뉴타운 문제가 터지게 된 계기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부동산 경기 침체였다. 현행 뉴타운 사업은 공공이 도로 등 일부 기반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제외하면, 조합원이 땅을 내놓고 건설사가 공사비를 댄 뒤 분양을 통해 이익을 남기는 민간사업이어서 집값 하락이 최대의 위험 요인이다. 수익성이 떨어질수록 반대로 조합원이 내야 할 분담금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정부가 2009년부터 수도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하면서 입주자 사전예약에 나선 보금자리주택도 뉴타운 사업을 휘청거리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현재 경기권에 하남 미사, 고양 원흥 등 11개 보금자리지구를 지정해 사업을 추진중인데, 자치단체가 지정한 뉴타운에 견줘 위치는 좋고 분양값이 저렴해 뉴타운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게 부동산업계의 평가다. 2009년 10월 사전예약을 받은 고양 원흥지구의 경우 전용면적 60~85㎡ 아파트 분양값이 3.3㎡당 850만원으로 고양시 일대에서 가장 저렴했고, 이 여파로 이듬해 분양에 들어간 원당뉴타운이 미분양 직격탄을 맞았다. 또 지난해 보금자리 부천 옥길지구가 소사뉴타운 바로 옆에서 사전예약을 시작하자 소사뉴타운도 줄줄이 미분양 사태를 겪고 있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연구소장은 “정부는 애초 보금자리주택은 서울 외곽 그린벨트, 뉴타운은 서울과 경기 구도심에 위치해 서로 영향이 없을 것으로 봤지만 현실적으로는 충돌하는 결과가 빚어진 상황”이라며 “뉴타운은 자치단체 소관이라며 나 몰라라 한 정부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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