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 ㅊ농원 교회 교육장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상담원이 한센인들의 인권상담을 받고 있다.
“속내 털어놓긴 평생 처음” 한센인들, 한서린 살풀이 “70평생에 처음으로 이런 얘기 하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네요.” 5일 오전 11시. 경북 칠곡군 지천면 한센인 정착촌 ㅊ농원 교회 교육장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 순회상담이 시작됐다. 이 자리에서 남편과 함께 자신의 외면당한 삶을 털어놓던 한 노파는 한숨처럼 소감을 밝혔다. 이날 ㅊ농원을 비롯해 부산시 북구 용호동 한센인 정착촌 등에서 온 수십명의 한센인(한센병 치유자나 환자)들은 저마다 오랜 세월 겪어야 했던 자신들의 고초에 대해 털어놓으며 국가가 지금이라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강아무개(74)씨는 27살의 꿈많은 청년이던 1957년 발병했다. 당시 초등학교에서 천직으로 생각하며 교편을 잡고 있던 그는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이듬해 칠곡 한센 병원에 입원했다. 한센병은 요즘에는 리팜피신 4알 1회 복용으로 전염력이 없어지고, 발견 후 6개월∼1년 치료로 완치가 되며 한센병 가족과 같이 살고 있어도 감염 확률이 4∼8/333만에 불과해 환자를 격리할 필요가 더 이상 없는 병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한센병에 걸리면 농사일은 물론, 동네 우물물도 먹지 못하고 집안이 풍비박산 나던 시절이었다. 좌절감을 느끼고 자살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치고 병원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강씨는 “한센인으로서 당한 설움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며 “병원에 입원하려면 다른 환자들이 난리를 치고, 밥값이 있어도 식당에서 밥조차 먹을 수 없었으며, 얼마전 까지 버스도 태워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씨는 “최근까지도 한센인들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의식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며 1991년의 ‘개구리 소년 사건’에 대한 질문에 답했다. 그는 “이제 한센병은 투약으로 치료가 가능한데 당시 이 사건에 마을 사람들이 연루됐다는 헛소문이 돌면서 심지어 자녀가 이혼하거나 직장을 잃는 피해까지 있었다”며 “이런 사실을 널리 알려 한센 환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이날 이름을 밝히기를 원치않은 한 주민은 잘못된 언론보도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기도 했다. 부산시 남구 용호 2동에서 찾아온 ㅇ아무개(78)씨 부부는 소록도에서 겪었던 아픈 사연을 털어놨다. ㅇ옥씨는 “그 때 결혼을 하려면 정관수술부터 해야 했다”며 “임신 8개월된 임산부를 강제로 낙태시키는 경우도 있었다”고 치를 떨었다. 그는 “당시 간척사업 등에 강제동원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보상 한 푼 못받았다”며 “지금이라도 힘들게 살아온 우리들이 노후라도 편히 지낼 수 있게 국가가 도와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인권위 상담은 7일까지 계속된다. 6일에는 구미 간디자유학교 고교생 30명이 방문해 인권교육을 받고, 지역 기관 및 교육관계자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지역 공동체 토론회도 열린다. 칠곡/글·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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