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인시장, 통통 튀는 미술관 됐네

지난달 30일 시장조각설치대회가 열린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채소가게에서 가게 주인 정순화(49)씨 부부가 가게 벽에 사과나무를 그려준 서울예고 학생들과 함께 재미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종로구 제공

어물전 벽엔 푸른바다 넘실
족발집엔 귀여운 돼지 장식
예술고·미대생들 함께 꾸며
상인들도 활짝 “명소 됐어요”

철사나 페인트통을 들고 뛰어다니는 대학생들 사이로 재래시장 상인들이 수다를 펼쳤다. “우리 가게가 제일 예쁜 것 같아!” “그 집은 뭐 그렸어?” 50~60대 상인들은 저마다 자기 가게를 자랑했다.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에서 열리는 ‘조각 설치 대회’ 준비 막바지였던 지난달 30일 저녁 전통시장은 오랜만에 젊은이들과 손님들로 북적였다. 눈에 잘 띄지 않던 지하 횟집의 기둥은 손님의 눈길을 끄는 천하대장군으로 변신했다. 가수가 꿈이었다는 사장이 운영하는 반찬가게는 레코드판과 마이크를 붙여 복고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물전 벽에는 새파란 바다가 넘실거리고, 족발가게 진열장에는 통통한 돼지 모형을 장식했다.

통인시장의 조각 설치 대회는 재래시장 상인과 예술고·미술대 학생이 짝을 이뤄 각 가게들의 사연을 조각이나 그림 등으로 연출하는 축제다. 이번에 처음 열린 이 대회에는 가게 74곳 가운데 54곳이 참여했다. 지난달 13일부터 시장 인근 서울예고 학생 50여명과 추계예술대·상명대의 미술 전공 학생 30여명이 시장 상인들의 의견을 반영해 미술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중년, 노년층이 오가는 재래시장에 젊은이들이 찾아오면서 상인들도 들떴다. 당장 매출이 늘어나는 실속은 없더라도 일단 축 처진 시장 분위기에 활력이 넘친다는 반응이었다. 30여년 동안 과일과 채소를 팔아온 정순화(49)씨의 가게 벽에는 큼지막한 사과나무가 생겼다. 고등학생들이 그려넣은 그림이다. 정씨는 “빈 상자를 쌓아두던 칙칙한 구석자리였는데 저렇게 예쁘게 바뀔 수도 있구나 싶었다”며 “손님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명소가 됐다”고 활짝 웃었다.

학생들과 예비 작가들에겐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작품 활동을 할 기회였다. 백인태(29·설치미술가)씨는 작품을 설치해준 횟집에서 날마다 밥을 얻어먹었다며 민망한 듯 웃었다. 그는 “재래시장에는 마트에선 느낄 수 없는 사람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백씨의 감각 덕에 10만원도 안 되는 재료비로 어두컴컴했던 횟집은 톡톡 튀는 예술공간으로 변신했다.

통인시장 10년 단골이라는 김명순(43)씨는 “아기자기한 장식을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고 모처럼 시장에 활력이 돌아 반갑다”며 “다른 재래시장에서도 이런 사업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는 13일 열리는 축제 ‘통인시장의 위대한 탄생’에서는 시장 손님들의 투표와 심사를 통해 가장 기발한 작품도 선정한다. 엄지원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