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앓는 90대 할아버지가 산비탈 넝쿨에 사흘 동안 매달려 있다 극적으로 구조됐다. 이 노인은 구조 당시 탈수와 저체온증 등으로 거의 의식이 없었으나, 병원으로 옮겨진 뒤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26일 강원 삼척소방서와 가족 등의 말을 종합하면, 삼척시 교동에 사는 심아무개(93)씨는 지난 23일 오후 1시께 부인(85)이 차려준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집을 나섰다. 심씨의 막내 며느리 김아무개(46)씨는 “평소처럼 흰죽과 유산균 음료 4개를 드시고, 집 근처 야산에 있는 고구마밭을 둘러보고 오겠다고 나가셨다”며 “해가 진 뒤 한참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으셔서, 불길한 마음에 저녁 8시20분께 119 구조대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삼척소방서 구조대는 즉각 심씨가 간 곳으로 추정되는 마을 ‘향교 뒷산’ 고구마밭에 올라가 밤늦도록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성과가 없었다. 둘쨋날에는 구조요원 15명에 가족과 마을 주민들까지 합세해 수색했지만,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어려움을 겪었다. 실종 셋쨋날인 25일, 더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소방서 쪽은 구조요원을 27명으로 늘리고 인명 구조견까지 지원받아 수색한 끝에 이날 오후 2시께 산비탈 급사면에 걸려 있는 심씨를 찾았다.
박병희 삼척소방서 진압조사팀장은 “발견 당시 심씨는 70~80도의 깎아지른 산비탈에서 미끄러지면서 등나무 줄기에 발이 엉킨 채 거꾸로 걸려 누워 있었다”며 “쓰러진 나무 등걸이 머리를 받쳐주고 있긴 했지만, 오랜 시간 가파른 산비탈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보니 안색이 창백하고 저체온증과 탈수 증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심씨는)고령임에도 키가 180cm에 가까울 정도로 체격 조건이 좋고, 가벼운 치매 증세 말고는 별다른 질병이 없어 3일 동안 버텨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50시간 가까이를 산 속에서 보낸 심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며느리 김씨는 “산비탈에서 미끄러지면서 입은 가벼운 찰과상과 나무 넝쿨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다 생긴 발등의 상처를 빼곤 크게 다치신 데가 없다”며 “벌써부터 ‘다 나았으니 집에 가자’고 채근하신다”며 웃었다. 춘천/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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