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서울 도봉구 창1동 초안산 근린공원에서 소풍을 나온 어린이들이 개울가에 앉아 작은 물고기들을 찾고 있다. 도봉구 제공
도봉구 초안산 1만7851㎡
업체서 골프연습장 추진
주민 항의로 10여년 갈등
서울시가 사들여 공원착공
업체서 골프연습장 추진
주민 항의로 10여년 갈등
서울시가 사들여 공원착공
산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실개천 곁에 아이들이 쭈그려 앉았다. 얕은 냇물에 손가락 하나만 담가 보고도 여기저기서 즐거운 탄성이 터져나온다. 서울 도봉구 창동의 초안산 언저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초안산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3년 전만 해도 초안산을 둘러싸고 매일 살풍경한 대치가 이어졌다. 갈등은 17년 전 ㄷ업체가 초안산에 골프연습장을 지을 용도로 땅을 사들이면서 시작됐다.
ㄷ업체는 1994년 도봉구 창1동 산157번지 일대 1만7851㎡의 땅을 사들인 뒤 수영장, 볼링장 등을 갖춘 스포츠센터를 짓겠다며 사업실시계획 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4년 뒤 슬그머니 골프연습장으로 용도를 바꿨다. 초안산을 곁에 둔 ㄱ아파트와 ㅊ아파트 주민들로선 달가울 리 없었다. 도봉구의 허파라고 할 만큼 생태적 가치가 높은 곳인 데다 초·중학교에 인접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1만명이 넘는 주민의 집단민원이 이어졌다. 거센 주민 반대에 부닥친 도봉구로선 쉽게 건축 허가를 내줄 수 없었다. 갈등 속에서 10여년 동안 초안산 일부가 벌거벗은 나대지로 방치되기도 했다.
결국 업체가 2008년 공사를 시작하자 주민 200여명은 현장 주변을 둘러싸고 인간띠잇기를 한 채 반대운동을 벌였다. 공사장 입구에서는 천막 농성이 계속됐다. 주민 안전이 위협되는 상황이었다.
구는 “골프장 대신 생태공원을 조성해달라”는 주민 3200여명의 집단민원을 근거로 서울시에 공원을 조성해줄 것을 설득했다. 2009년 시가 150억원을 들여 사업자에게 토지 보상을 해주면서 초안산은 15년 만에 주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구는 돌아온 초안산을 철저히 ‘주민참여형 공원’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주민이 나서서 되찾았을 뿐 아니라 주민이 디자인하는 공원이 된 셈이다. 지난해 8월 공원 설계를 시작한 뒤 10여차례 주민 협의와 전문가 회의가 이어졌다.
8일 낮 초안산에서는 근린공원 조성을 위한 착공식이 열렸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이 자리에서 “상처를 딛고 주민의 품에 초안산을 되돌려주는 첫 걸음을 걷는다”며 “다시는 잘못된 행정으로 인해 자연이 훼손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