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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돌 깔아줘 좋지만…일자리 없으면 아무 희망 없어”

등록 2012-01-10 22:41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홍기석씨가 지난 6일 오후 2평짜리 쪽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기초생활수급비 42만원으로 한달을 지내는 홍씨는 이달은 돈이 거의 바닥나 오는 20일 급여가 들어올 때까지 보름 내내 방 안에서 지내야 할 처지다. 장애인인 그는 만화방, 피시방을 거쳐 쪽방에 들어온 지 7년째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홍기석씨가 지난 6일 오후 2평짜리 쪽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기초생활수급비 42만원으로 한달을 지내는 홍씨는 이달은 돈이 거의 바닥나 오는 20일 급여가 들어올 때까지 보름 내내 방 안에서 지내야 할 처지다. 장애인인 그는 만화방, 피시방을 거쳐 쪽방에 들어온 지 7년째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시 희망온돌프로젝트’ 집중점검
현장 서울 동자동 쪽방촌
사정 잘 아는 활동가들과 소통한 덕택인지
냉골 사라지고 월세 걱정은 없어졌다
방 넓다는 이유로 온돌패널 절반만 깔아
“아직 생각이 짧아서 그래 그것만 고쳐주면 100점”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기획과 실행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월동대책인 ‘희망온돌프로젝트’를 내놨다. 지난해 10월27일 출근 첫날 영등포 쪽방촌을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하늘 아래 냉방에서 자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뒤 나온 서민 보호 대책이다. 낮 기온도 영하권에 머물 정도로 추위가 매서운 요즘 냉방에서 자야하는 사람들의 체감온도는 몇 도쯤 올랐을까? 50여일 째인 희망온돌프로젝트 현장에 가봤다.

 쪽방촌은 벌집처럼 완고하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2평 남짓한 10개의 방이 2열 횡대로 늘어서 있다. 칠이 모두 벗겨진 회색의 건물은 그 방의 주인들을 10년이고 30년이고 놓아주지 않는다. 겨울이면 지은 지 40여년 된 건물의 앙상한 뼈대 사이로 황소바람이 들고 난다. 상·하수도가 없어 따뜻한 물 한 방울 쓰지 못하는 곳에서 쪽방촌 사람들은 판자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추위를 견딘다.

 서울역 맞은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홍기석(44·가명)씨는 만화방, 찜질방, 피시방을 거쳐 쪽방에 들어온 지 7년째다. 청각장애 3급에 결핵보균자인 홍씨가 일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일용직으로 건설현장에 나가봐도 쫓겨오기 일쑤다. 그나마도 겨울철이면 아예 일감이 끊겨 42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로 한달을 지낸다.

 낮 최고 기온이 영하를 겨우 넘긴 1도였던 지난 6일. 홍씨의 주머니에 남은 돈은 현금 3만5000원과 1만원짜리 전통시장 상품권 한장이다. 오는 20일에나 수급 급여가 들어오는데 이달 쪽방 월세 16만원도 못냈다. 이렇게 빨리 돈이 바닥나면 “그냥 보름 내내 방구석에 있는 거”라며 홍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이날 홍씨가 사는 쪽방 집주인의 계좌에는 이달치 월세 16만원이 입금됐다. 쪽방촌 풀뿌리 단체인 ‘동자동사랑방’이 보낸 응급구호비다. 서울시는 올 겨울부터 쪽방촌과 고시원 등 겨울철 취약계층에 응급구호비를 지원하고 있다. 현장 사정을 잘 아는 활동가들이 복잡한 행정절차 없이 쪽방 주민들의 다급한 생활비를 지원한 뒤 입금 내역과 쪽방 계약서를 나중에 시에 제출하면 된다. 희망온돌프로젝트 쪽방촌 지원대책의 하나로, 홍씨가 네번째 수혜자다.


 시는 쪽방촌의 전기온돌(패널)과 보일러도 수리·교체해주고 있다. 희망온돌 사업에 참여하는 한국열관리시공협회는 쪽방촌의 전기온돌이 고장나면 언제든 공짜로 교체해주고 있다. 지난해 10월 전기온돌이 고장난 김원호(74)씨도 도움을 받은 동자동 주민 11명 가운데 한 명이지만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다른 쪽방보다 방이 넓다는 이유로 전기 패널을 절반만 깔아줘 몸을 조금만 들썩여도 냉방 쪽으로 구른단다. 이웃 주민이 “공무원들의 생각이 짧아서 그렇다”며 거들자, 김씨는 “그것만 고쳐주면 100점 드릴께”라며 웃었다.

 희망온돌프로젝트과 기존 월동대책의 차이는 민간과 협력한다는 데 있다. 현장을 잘아는 민간과의 소통은 불통과의 차이를 선명히 만들어낸다. 엄병천 동자동사랑방 대표는 “시가 그동안 수급자들에게 월 5만원의 난방비를 지급해왔지만 고장난 보일러나 전기온돌을 고치지 못해 냉방에서 자는 이들도 많았던 만큼, 그간의 일괄적인 난방비 지원보다 효율적인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엄 대표는 “희망온돌프로젝트를 통해 겨울철 쪽방촌 온도가 5도쯤 올라간 것 같다. 한시적 월동대책이지만 지속적으로 지원받을 길이 열리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동자동 쪽방촌 뒷골목에선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일시적인 지원보다 자립을 위한 대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쪽방촌 주민인 윤종완(59)씨는 “희망온돌한다고 해봐야 일자리가 없으면 아무 희망이 없다”며 “서울시가 공공근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주는 게 진짜 대책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희망온돌프로젝트의 특징인 민·관 협력에 대한 평가는 아직 첫 걸음인 만큼 큰 기대보단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사회복지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희망온돌 초기에는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자치구에 일시에 공문을 돌리는 등 추진과정 자체에 구태의연한 점이 있었지만 이후 지역 풀뿌리단체들과 만나 대화하면서 긴 호흡으로 신뢰를 쌓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시민사회 관계자는 “시민단체끼리도 서로 협력해본 경험이 적어 공통점을 찾아가는 게 과제”라고 전했다.

 서울시는 희망온돌사업이 끝나는 2월에는 프로젝트 내용을 정리·평가하는 백서를 펴내고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공동체 중심의 지원체계까지 포함한 서울시 복지전달체계 기본 틀을 만들 계획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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