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서울 영등포에 있는 시립 노숙인쉼터 ‘보현의집’에서 사진작가 조세현씨가 쉼터 입소자들에게 사진 찍는 법을 강의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첫 수업을 시작으로 이달 27일까지 조씨로부터 사진을 배운다.
영등포 쉼터 거주자 12명
조세현씨 사진강좌 수강
작품 품평에 메모 등 열성
조씨 “자립의지 다졌으면…”
조세현씨 사진강좌 수강
작품 품평에 메모 등 열성
조씨 “자립의지 다졌으면…”
펑, 펑. 플래시가 터졌다. 인물사진으로 명성을 쌓아온 사진작가 조세현(54)씨의 카메라 앞에서 인기 연예인도 긴장한 듯 바짝 얼어붙곤 한다.
하지만 지난 6일은 달랐다. 스튜디오 중앙에 선 모델도, 실내를 메운 이들도, 모두 거친 얼굴의 중년 남성들이었다. 스튜디오 벽 한켠에는 ‘홈리스(노숙인)와 함께하는 조세현의 사진 강의 희망의 프레임 1기’ 라고 쓰인 펼침막이 붙었다.
이날 서울 강남구 논현동 조씨의 사진 스튜디오. 수업이 시작되자 실내가 조용해졌다. “이 사진, 너무 아래서 찍었죠?” 조씨의 손에 들린 사진을 제대로 보기 위해 12명의 수강생들이 여기저기서 몸을 쭉 내밀었다. 영등포의 시립 노숙인쉼터 ‘보현의집’, ‘행복한우리집’ 등에서 생활하는 이들이다. “좋은 말로 해선 실력이 안 는다”며 조씨가 노숙인들이 찍은 사진을 꼬치꼬치 품평하는 동안 수강생들은 고개를 주억거리거나 메모를 했다.
그동안 사찰 체험, 인문학 강좌 등 노숙인의 자활의지를 북돋우기 위한 민·관 차원의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사진 강좌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10년 영국 윌리엄 왕자의 자선행사로 열린 국제 사진전 ‘포지티브 뷰’에 참석했다가 감명받은 조씨가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적극 제안해 만든 자리다. 당시 영국 왕실은 사진전 수익금을 노숙인의 사진 교육을 위해 기부했다.
지난달 21일 보현의집에서의 첫 만남은 탐색전에 가까웠다. 자원해 나선 자리지만 조씨는 행여 이들에게 권위적으로 보일까봐 조심스러웠다. 수강생들의 눈엔 “사진 강의가 내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내비쳤다.
사진은 즉각적이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서로의 얼굴을 찍은 뒤 결과물을 받아보는 이들의 얼굴에는 금세 웃음이 번졌다. 조씨로부터 칭찬을 받으면 상장을 보관하듯 인화지를 앨범에 고이 꽂아 넣었다.
무엇보다 조씨가 “6주 뒤에 여러분 다 취업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 수강생들은 반가워했다. 자활을 꿈꾸는 노숙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쉼터에서 3년 동안 생활했다는 한 남성은 “사진을 찍어본 적은 없지만 수업을 들어보니 한번 (사진 일을) 해보자 싶은 기분이 들었다”며 웃었다. 박아무개(53)씨는 “첫 수업에선 긴장됐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기회를 얻게 되어 좋았다”고 했다.
조씨 역시 이 강의를 일회성 이벤트로 끝낼 생각이 아니다. 이달 하순 1기 강의를 마치면 5월에 2기 수강생을 모집하고 여름엔 이들 가운데 우등생을 대상으로 실무 능력을 갖출 중급반을 운영할 계획이다. 서울시가 관리하는 공원 등에서 수강생들이 전속 사진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이들을 채용하는 방안도 건의할 생각이다. 조씨는 “이 수업을 통해 사진 실력이 느는 것만큼 자립 의지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수강생들이 긍정적인 창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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