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경기 고양시민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42년 만에 철책 제거가 시작된 한강하구의 행주산성~일산대교 12.9㎞ 구간을 둘러보고 있다.
고양·김포시, 협의없이 자전거길·영상도시 등 추진
환경단체 “환경재앙 올 수도…생물 보호계획부터”
환경단체 “환경재앙 올 수도…생물 보호계획부터”
한강하구의 철책선 철거 작업이 42년 만에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지방자치단체들이 철책 제거 구간에 대한 대규모 개발계획을 앞다퉈 진행해 한강둔치의 막개발과 생태계 파괴 우려가 일고 있다. 경기도 김포·고양 시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철책선 제거에 앞서 생태환경 파괴를 막을 대책을 세우고 올바른 활용 방안을 찾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4일 각 지자체의 말을 종합하면, 고양시는 한강하구 12.9㎞의 철책을 제거한 뒤 68억원을 들여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만들겠다며 최근 실시설계 용역을 발주했다. 고양시는 또 50억원을 들여 습지보호지역인 장항습지에 탐방로와 탐조대·방문자센터 등을 설치할 계획도 세웠다.
김포시는 257억원을 들여 서울 강서구 방화2동~김포시 풍곡·향산리 일대 163만㎡에 자전거도로와 산책로, 다목적광장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장항습지 건너편 김포시 고촌읍 향산리·걸포동 일대 230만㎡에는 2조원을 들여 영상문화복합도시 ‘한강시네폴리스’를 조성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는 2016년까지 100억원을 들여 서울~행주산성~일산 호수공원~파주 통일전망대를 잇는 관광상품을 개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런 지자체들이 너나없이 개발계획을 쏟아내자, 한강하구 생태환경 파괴를 우려하는 시민들이 모임을 꾸리는 등 제동을 걸 태세다. 지난달 출범한 김포시민모임 ‘한강하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정왕용(49)씨는 “불투명한 한강시네폴리스사업을 전제로 한강둔치에 손을 대면 돌이킬 수 없는 환경재앙이 될 것”이라며 “합리적인 개발 방안이 마련될 때까지 체육공원이나 자전거도로 등의 섣부른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도 “한강 하류 쪽에 국한된 습지보호지역을 행주대교 인근까지 확대하고 철새 등 생물 다양성 보호계획을 먼저 세운 뒤 철책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양환경운동연합과 고양습지보전네트워크 등은 “한강 철책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역사적 유물로, 없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관광자원과 생태계 보호를 위해 보존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시민들의 걱정이 커지자 고양시와 김포시는 최근 신중한 자세로 돌아서는 모습이다. 이들 지자체는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친환경적인 개발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고양시 관계자는 “행주대교~김포대교 구간 3.6㎞ 철거구간 가운데 1.6㎞만 철거한 뒤 잠정 중단한 것”이라며 “평화누리 자전거길은 장항습지의 경관을 감상하며 생태계도 보호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한강하구 습지보호지역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으로, 생물다양성이 높은 자연경관보전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굿둑이 설치되지 않은 국내 유일의 대하천 하구역이기도 하다. 정부는 2006년 한강하구의 심장에 해당하는 고양 장항습지를 비롯해 파주 산남습지 등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장항습지는 재두루미 등 멸종위기종 21종이 서식하고 있으나 최근 김포지역의 수변부 공사와 홍도평 농경지 훼손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한강유역환경청은 “김포·고양구간 철책 제거는 겨울철 재두루미의 서식환경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한다”며 탐방객 출입 제한 같은 보호 대책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고양/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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