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은 130여명의 민족·민주열사가 묻혀 있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성지’로 꼽히지만, 장소가 비좁고 표지판이나 진입로, 편의시설 등이 없어 참배객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경기 마석 모란공원 가보니
전태일·문익환·김근태 등 잠든 곳
표지판·진입로 없어 찾기 힘들어
국립묘지 승격해 희생자 예우해야 3일 안철수·문재인 등 야권의 주요 대선후보들이 잇따라 방문한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의 ‘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열사들의 묘를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묘역 입구엔 작은 묘지도 하나만 달랑 세워져 있을 뿐, 안내 표지판이나 진입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통일운동의 선구자, 겨레의 벗’ 글귀가 새겨진 문익환 목사의 묘와 반대편의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묘’, 중앙에 자리한 ‘삼백만 근로자 대표’ 전태일 열사의 묘를 참배하기 위해 수백기의 무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비석을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벼랑 위에 세운 문 목사 부부 묘소의 크기는 3×3m에 불과해 참배객 10명을 맞기에도 비좁아 보였다. 모란공원에 민주열사 묘역이 조성된 것은 1970년 분신 자살한 전태일 열사의 묘가 공안당국의 방해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사립 모란공원에 안장됐던 데서 비롯됐다. 이후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에 저항하다 희생된 노동자·농민·빈민·학생·지식인들이 ‘전태일 열사 곁에 묻히고 싶다’며 하나둘씩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민주열사 묘역이 만들어졌다. 모란공원 묘역엔 전태일 열사와 그의 어머니 이소선씨를 비롯해 문익환 목사, 재야운동가 계훈제, 최종길 전 서울대 교수, 인혁당 사건 피해자 김용원,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 박종철 열사 등 130여명의 민주인사들이 묻혀 있다. 지난해 말 고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한 김근태 민주당 고문도 국립 대전현충원을 마다하고 ‘민주화운동 동지들과 함께 묻히겠다’며 모란공원을 택할 만큼, 광주광역시 망월동 묘역과 함께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꼽힌다. 하지만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은 수백기의 일반 묘지와 뒤섞여 있는데다, 장소가 협소하고 편의시설이나 기반시설 등이 전혀 없어 희생자 예우 대책이 시급하다. 신형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홍보실장은 “사설묘지이므로 협소해도 확장할 수 없고 편의시설이나 기반시설들을 설치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시민 안명남(63·파주시 문산읍)씨는 “민주열사 묘역에 들어설 때마다 너무 초라해서 눈물이 나온다”며 “민주화를 위해 정의와 열정으로 싸우다 희생된 사람들이다. 하루빨리 국립묘지를 만들어 성역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묘역에서 만난 한 참배객도 “3·15 마산의거나 4·19, 5·18 등 이승만과 전두환 독재정권에 맞서다 숨진 희생자들은 국립묘지에 갔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희생자들은 국립묘지에조차 못 들어갔다”며 민주열사 묘역을 국립묘지로 조성할 것을 촉구했다. 모란공원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노동자나 대학생들이 순례코스로 많이 찾고 있지만 따로 민주열사 묘역으로 지정하거나 관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남양주/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추석 뒤 여론조사…박 ‘하락 진정’, 안 ‘주춤’, 문 ‘꾸준한 상승’
■ 중국 ‘보시라이 부적절한 성관계’ 공개 왜?
■ “성폭행범인데 구속영장 기각” 피해 여성 투신자살
■ 논문 원저자도 “안철수 표절 아니다”…‘묻지마 검증’ 비판
■ 김재범 “식사 오라 해서…” 새누리 ‘묻지마 영입’ 망신
■ 한영애, 광주서 ‘빨치산 노래’ 부른다
■ [화보] 프로야구 700만 달성 '꿈이 아니다!'
표지판·진입로 없어 찾기 힘들어
국립묘지 승격해 희생자 예우해야 3일 안철수·문재인 등 야권의 주요 대선후보들이 잇따라 방문한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의 ‘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열사들의 묘를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묘역 입구엔 작은 묘지도 하나만 달랑 세워져 있을 뿐, 안내 표지판이나 진입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통일운동의 선구자, 겨레의 벗’ 글귀가 새겨진 문익환 목사의 묘와 반대편의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묘’, 중앙에 자리한 ‘삼백만 근로자 대표’ 전태일 열사의 묘를 참배하기 위해 수백기의 무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비석을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벼랑 위에 세운 문 목사 부부 묘소의 크기는 3×3m에 불과해 참배객 10명을 맞기에도 비좁아 보였다. 모란공원에 민주열사 묘역이 조성된 것은 1970년 분신 자살한 전태일 열사의 묘가 공안당국의 방해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사립 모란공원에 안장됐던 데서 비롯됐다. 이후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에 저항하다 희생된 노동자·농민·빈민·학생·지식인들이 ‘전태일 열사 곁에 묻히고 싶다’며 하나둘씩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민주열사 묘역이 만들어졌다. 모란공원 묘역엔 전태일 열사와 그의 어머니 이소선씨를 비롯해 문익환 목사, 재야운동가 계훈제, 최종길 전 서울대 교수, 인혁당 사건 피해자 김용원,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 박종철 열사 등 130여명의 민주인사들이 묻혀 있다. 지난해 말 고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한 김근태 민주당 고문도 국립 대전현충원을 마다하고 ‘민주화운동 동지들과 함께 묻히겠다’며 모란공원을 택할 만큼, 광주광역시 망월동 묘역과 함께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꼽힌다. 하지만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은 수백기의 일반 묘지와 뒤섞여 있는데다, 장소가 협소하고 편의시설이나 기반시설 등이 전혀 없어 희생자 예우 대책이 시급하다. 신형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홍보실장은 “사설묘지이므로 협소해도 확장할 수 없고 편의시설이나 기반시설들을 설치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시민 안명남(63·파주시 문산읍)씨는 “민주열사 묘역에 들어설 때마다 너무 초라해서 눈물이 나온다”며 “민주화를 위해 정의와 열정으로 싸우다 희생된 사람들이다. 하루빨리 국립묘지를 만들어 성역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묘역에서 만난 한 참배객도 “3·15 마산의거나 4·19, 5·18 등 이승만과 전두환 독재정권에 맞서다 숨진 희생자들은 국립묘지에 갔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희생자들은 국립묘지에조차 못 들어갔다”며 민주열사 묘역을 국립묘지로 조성할 것을 촉구했다. 모란공원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노동자나 대학생들이 순례코스로 많이 찾고 있지만 따로 민주열사 묘역으로 지정하거나 관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남양주/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추석 뒤 여론조사…박 ‘하락 진정’, 안 ‘주춤’, 문 ‘꾸준한 상승’
■ 중국 ‘보시라이 부적절한 성관계’ 공개 왜?
■ “성폭행범인데 구속영장 기각” 피해 여성 투신자살
■ 논문 원저자도 “안철수 표절 아니다”…‘묻지마 검증’ 비판
■ 김재범 “식사 오라 해서…” 새누리 ‘묻지마 영입’ 망신
■ 한영애, 광주서 ‘빨치산 노래’ 부른다
■ [화보] 프로야구 700만 달성 '꿈이 아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