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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마을’엔 허옇게 말라죽은 농작물만이…

등록 2012-11-04 19:28수정 2012-11-05 15:30

지난 1일 오후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마을 텃밭의 고추들이 허옇게 말라 있다. 텃밭 뒤로 ‘불산누출사고 피해지역 절대 식용불가’라고 적힌 펼침막이 걸려 있다.
지난 1일 오후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마을 텃밭의 고추들이 허옇게 말라 있다. 텃밭 뒤로 ‘불산누출사고 피해지역 절대 식용불가’라고 적힌 펼침막이 걸려 있다.
현장 | 구미 ‘불산 누출’ 그 뒤
민·관 조사단 “불산농도 정상” 불구
주민들 “눈에 안 보여 더 불안” 호소
아직도 대부분이 ‘피난생활’ 고수해
임시거주시설 가니 신경질적 반응만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우려

지난 1일 오후 3시께 유독성 물질 불산(불화수소산) 누출 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마을은 한낮인데도 텅 비어 있었다. 지난달 6일 마을을 떠나 인근 시설과 친척집 등으로 옮겨간 주민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간이 넘도록 마을과 들판을 돌아다녔지만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집을 떠난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가 짖는 소리만 이따금 들려왔다. 나이 많은 마을 주민들이 모여 놀던 봉산1리 마을회관과 봉산리 노인회관은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집 마당 호박·고추·깻잎 등은 물론 들판의 농작물들은 허옇게 말라죽은 채 방치돼 있었다. 마을 곳곳에는 “불산누출사고 피해지역 절대 식용불가”라고 적힌 펼침막이 내걸려 있어 스산함을 더했다. 이날 마을에서 유일하게 만난 50대 여성은 “젊은 사람들이 낮에 가끔 가축 먹이 주러 다녀갈 뿐”이라고 말했다.

저녁 7시께 마을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인 산동면 백현리 환경자원화시설의 임시거처는 100명 넘는 주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주민들은 오랜 ‘피난’생활에 지친 듯 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응시하고 있었다. 주민에게 말을 걸자 “귀찮으니 저리 가서 얘기하라”는 신경질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옆에 있던 주민은 “오랫동안 집에 못 가다 보니 모두들 예민해져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달 8일 사고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지원대책을 내놓았지만, 주민들의 불신과 불안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최근 민관 합동 환경영향조사단까지 나서서 “봉산리 일대 불산 농도 측정 결과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주민 조아무개(54·여)씨는 “불산이 눈에 보이지가 않으니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누구는 안전하다고 하고 누구는 위험하다고 하는데 무슨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다시 들어가 산다고 해도 평생 찝찝함과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할 게 뻔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명석(49) 봉산리 이장은 “피해는 앞으로도 이어질 텐데, 정부와 구미시의 보상대책은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에 대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27일 불산 누출 사고 이후 병원 검진을 받은 사람은 1만2243명, 불산에 노출된 가축은 3900여마리, 농작물 피해 면적은 212㏊에 이른다. 경북대병원 등이 지난달 11~12일 대피해 있는 주민 52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69.2%(36명)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관련한 충격을 받아 전문가 상담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지 정부종합대책반은 과연 앞으로 인체에 문제가 없을지를 묻는 주민들의 궁금증과 불안감을 속시원히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70대 어르신이 되레 기자에게 하소연하듯 되물었다. “이제 마을로 돌아가도 되는 거야? 내년에 농사는 지을 수 있겠어? 어떻게 말 좀 해줘.” 민경석 민관 합동 환경영향조사단장(경북대 교수)은 “피해 농작물 제거와 마을 청소가 끝난 뒤 주민 복귀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괜찮으니 안심하라고 하지만, 불산이 휩쓸고 간 산동면 주민들에게 사고의 여파는 계속되고 있었다.

구미/글·사진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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