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용흥동에서 주민 권석노(67)씨가 전날 오후 중학생의 장난으로 발생한 산불에 휩싸여 시커먼 잔해로 뒤바뀐 마을 집들을 가리키며,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포항/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주말 울산·충남 등 20여곳 산불
4명 숨지고 주민 2000여명 대피
강풍에 불길 번지며 피해 키워
4명 숨지고 주민 2000여명 대피
강풍에 불길 번지며 피해 키워
건조하고 강풍이 불었던 주말 경북 포항에서 중학생이 장난으로 지폈던 불이 넓게 번지면서 인근 동네의 거동이 불편한 70대가 목숨을 잃기에 이르렀다.
9일 오후 3시35분께 포항시 북구 용흥동 초등학교 뒷산에서 불이 났다. 막 중학교에 진학한 이아무개(12·1년)군이 친구들과 라이터로 나뭇잎에 불을 붙이는 장난을 하다 불씨가 옮겨붙었다. 불은 메마른 날씨에 강한 바람을 타고 번졌다. 불은 오후 5시께 1.3㎞쯤 떨어진 북구 우현동 안아무개(79)씨 집 근처에까지 닿았다. 대동우방타운 아파트 뒤 야산의 100m쯤 위에 있는 안씨 집에 있던 부인 윤아무개(68)씨가 가까스로 빠져나왔지만, 남편 안씨는 밤 10시50분께 불탄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불로 14명이 다쳤고 47가구 118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불은 임야 8㏊를 태운 뒤 17시간 만인 10일 오전 8시30분께 잡혔다.
10일 오후 안씨 집은 완전히 불에 타 시커먼 잔해만 남아 있었다. 대동우방타운 아파트 외벽은 검게 그을려 당시 긴박함을 짐작하게 했다. 아파트 주민 전창옥(66)씨는 “어제 저녁 아파트 쪽으로 불덩어리가 떨어져 주민들이 모두 밖으로 뛰쳐나오고 난리였다”고 말했다.
산불이 곧바로 몰아닥친 북구 용흥동 마을은 수십채 집이 폭격을 당한 듯 시커먼 잔해를 드러낸 채 허물어져 있었다. 곳곳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며 매캐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마을 주민 권석노(67)씨는 “동네 뒷산이 불바다가 됐다. 놀라서 근처 아파트에서 물을 끌어다 집에 뿌렸지만, 바람이 워낙 강하게 불었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 이순남(70)씨는 “불길이 아파트 높이만큼 치솟았다. 주민들은 맨발로 뛰어나와 내달아나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며 충격을 떨치지 못했다.
9~10일 전국 곳곳에서 산불 등 26건의 화재로 4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다쳤으며, 2000여명이 한때 대피했다. 건조주의보와 강풍주의보가 겹쳐 삽시간에 불이 번진 탓에 피해가 커졌다.
10일 오전 11시께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야산 밭에서 폐기물을 태우던 박아무개(79·여)씨가 불길이 바람을 타고 번지는 바람에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9일 오후 3시께는 전북 남원시 아영면 의지리에서 양아무개(80)씨와 부인 김아무개(78)씨가 밭두렁 잡풀을 태우다 강풍에 불길이 번지자 연기에 휘말려 숨졌다.
9일 저녁 8시30분께 울산 울주군 상북면 향산리 야산에서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산불이 나 언양읍 송대·직동·다개리 등 주변 7개 마을로 확산되면서 임야 50여㏊를 태우고 10일 오후 4시께 꺼졌다. 이 불로 주민 3명이 다쳤으며, 7개 마을 주민 1890여명이 대피했다. 소 1마리와 닭·개 등 가축 1350여마리가 죽었다.
포항 울산 춘천/김일우 최상원 박수혁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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