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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홍보·70년대식 반공 영상물…“관광 왔는데 이게 뭐야”

등록 2013-06-02 21:53수정 2013-06-02 21:54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 오르려는 탐방객들이 안보교육관에서 남북 대결을 강조하는 8분 남짓한 동영상을 보고 있다.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 오르려는 탐방객들이 안보교육관에서 남북 대결을 강조하는 8분 남짓한 동영상을 보고 있다.
[충청·강원 쏙]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 방문기
통일전망대에서 북녘땅을 바라보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북녘이 고향인 실향민들은 이곳에서 통일과 귀향을 염원한다. 그런데 냉전시대 안보교육을 받아야만 통일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는데….

안보교육관서 튼 영상물
정신교육하듯 “북괴군 도발…”
뒤이어 MB와 이승만 등장
건국대통령 띄우고 치적 홍보

관광객들 “낡은 흑백논리 강요”
“완전 보수전망대” 볼멘소리 나와
“통일의식 높이는 교육 필요” 지적

지난달 17일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를 찾았다. 석가탄신일 연휴여서인지 사람들이 북적였다.

통일안보공원에 이르자 출입신고서를 쓰란다. 안내원이 안보교육관 옆 출입신고소로 이끈다. 관광객들은 “왜”, “무슨 일이야”라고 수군대면서도 줄지어 안내원을 따랐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신사, 주부, 학생 등이 힐끔힐끔 옆 사람 것을 훔쳐보며 신고서를 썼다. 두 줄로 긋고 새로 쓰는가 하면 잘못 썼다며 종이를 구겨 버리는 이도 있다. “때가 어느 땐데 요즘 세상에도 이런 걸 꼭 써야 하나, 참 나”라는 불평이 곳곳에서 나왔다.

이름, 주소, 생년월일 등을 적고 신분증을 신고소 직원에게 내밀었더니, 비표 같은 출입증을 쥐여준다. 20분쯤 기다렸더니 “안보교육이 실시되니 안보교육관으로 이동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관광 왔더니 뭔 소리야. 아직도 이런 교육을 해야 해?”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조용히 하세요”라는 고압적인 목소리에 이내 모두 소리를 죽인다. 적막감마저 흐른다.

실내 전등이 꺼지더니 ‘여기서부터는 민간인 통제선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영상이 시작됐다. “민통선 구간을 통과한 후에는 주정차를 할 수 없습니다. 통일전망대는 북한지역으로부터 약 3㎞ 떨어진 곳으로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을 자행하는 북괴군의 도발이 있을 수 있는 지역입니다”는 안내 말이 나온다. 어둠 속에서 여성이 “아직 북괴라는 말을 쓰네”라고 하자, 남편인 듯한 이한테서 “이 사람이 여긴 군대 아녀. 군대선 그렇게 말하는 겨”라는 지청구가 날았다.

두번째 영상이 시작됐다. ‘위대한 유산 대한민국’이란 제목이 화면에 박혔다. 여기저기서 휴대전화를 꺼내거나 수다를 떠는 등 딴짓이 시작됐다.

영상은 군 복무 시절이나 예비군 훈련 때 상영되던 영락없는 ‘정신교육용’이었다. 느닷없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등장했다. 퇴임 석 달이 지났지만 영상에는 여전히 현직 대통령이었다. 2010년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장면, 2011년 7월 평창겨울올림픽 유치 장면에 잇따라 등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는 대통령이 안 바뀌었네”라는 우스개와 함께 웃음이 터졌다.

이어 이승만 전 대통령이 출연했다. 그러고는 “친미·친일의 사대주의 정권이라며 대한민국 건국과 근대사의 주역에 대해 폄훼하는 일, 그것은 사회의 분열과 혼란을 야기시키고 자유대한민국 파괴를 기도하는 일”이라는 ‘엉뚱한’ 설명이 뒤따랐다.

가족들과 함께 왔다는 임아무개(51)씨는 “권위주의 정권 때나 통했을 법한 낡은 흑백논리를 강요받은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국민의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터무니없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라고 말했다. 교육관을 나가는 사이 “뭐야? 이거. 괜히 봤네”, “군대에서 정신교육 받은 느낌이네”, “통일전망대가 아니라 보수전망대구먼” 등 불만 섞인 소리들이 터져나왔다.

탐방객들이 출입신고소에서 출입 신고서에 이름, 주소 등을 적고 있다.
탐방객들이 출입신고소에서 출입 신고서에 이름, 주소 등을 적고 있다.

통일전망대 직원에게 이런 안보교육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안 그래도 이런 교육을 꼭 받아야 하느냐는 항의를 자주 받는다. 하지만 군부대에서 상영하라고 시킨다. 지난해 10월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 뒤로 사단장까지 와서 안보교육을 제대로 시키라고 해서 강화했다”고 말했다.

통일전망대를 관할하는 육군부대는 “사단 행정예규 ‘민북지역 출입규정’에 따라 안보교육을 받은 관광객에게만 통일전망대 관람을 허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전망대 쪽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30분 단위로 안보교육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10명 미만이 찾거나 오후 4시가 지나면 그냥 넘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부대가 강조한 출입규정을 받아보니, 육군부대 쪽 설명과는 달랐다. ‘출입 시 주의사항을 교육하라’고만 돼 있을 뿐이었고, ‘정신교육’ 등을 시켜야 한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부대에 따졌더니, 정훈참모는 “규정에 따라 출입 시 주의사항만 교육받으면 된다. 나머지 교육 내용은 통일전망대 쪽에서 마음대로 한다”고 대답했다. 8분 남짓한 안보교육 영상 가운데, 주의사항이 나오는 앞부분 1~2분가량만 보면 된다는 것이다. 통일전망대 쪽에 안보교육 영상 상영 이유를 다시 물었더니, “국가정보원도 영상을 틀어달라고 하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강원·경기·인천 접경지역 11곳에 전망대가 있지만, 북녘 땅을 보기 위해 안보교육을 꼭 받도록 하는 곳은 고성 통일전망대가 유일하다. 유성철 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은 “시대에 뒤떨어진 1970~80년대 주입식 반공교육을, 지금도 통일전망대 관람을 빌미로 탐방객들에게 강제하는 것은 문제다. 안보교육이 꼭 필요하다면 북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는 내용이 아니라 통일이나 남북평화 문제를 고민할 수 있게 하는 내용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보교육 내용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한성 연세대 법학과 교수는 “안보·반공교육이란 용어 자체가 냉전시대 체제경쟁의 산물이다. 역사의 흐름을 뒤로하는 안보교육은 바로 중단하고 통일을 바라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메시지를 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고성/글·사진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사진 고성군 제공
사진 고성군 제공

고성 통일전망대는?

금강산 육안으로 조망 30년간 3200만명 방문

강원도 최북단 고성군 현내면에 있는 통일전망대는 1983년 문을 열었다. 북녘 땅을 볼 수 있는 전망대 가운데 가장 먼저 생겼다. 재향군인회가 운영한다.

전망대에는 통일 안보공원, 한국전쟁 체험 전시관 등이 있다. 안보공원에서 출입신고서를 쓴 뒤 차량으로 4~5분쯤 달려야 하고, 최북단 명파리 마을을 지나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검문소를 거쳐야 닿을 수 있다. 군부대는 일일이 출입신고서를 요구하며, 차량 수색과 검문검색 등을 한다.

2층 전망대에 오르면 금강산을 맨눈으로 볼 수 있다. 아홉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즐겼다는 구선봉, 해금강, 석호 등도 한눈에 들어온다. 개관 30년을 맞은 통일전망대는 지금까지 3200여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다.

북녘 땅을 볼 수 있는 전망대는 철원군 평화전망대와 승리전망대, 화천군 칠성전망대, 양구군 을지전망대, 고성군 통일전망대 등 강원도에만 5곳 있다. 경기도엔 연천군 태풍전망대와 열쇠전망대,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도라전망대, 김포시 애기봉전망대 등 5곳이 있고, 인천 강화군 평화전망대까지 접경지역 11곳에 전망대가 있다.

고성/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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