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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채용·입찰·원장…비리를 디자인하는 패션산업연구원

등록 2013-06-23 21:12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 지난해 10월 대구 엑스코(EXCO)에서 연 ‘대구 패션 페어’에 140여개 섬유·패션업체가 참가해 부스를 차렸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제공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 지난해 10월 대구 엑스코(EXCO)에서 연 ‘대구 패션 페어’에 140여개 섬유·패션업체가 참가해 부스를 차렸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제공
[영남 쏙] 대구 패션산업연구원 운영 ‘복마전’
한때 ‘섬유도시’로 불렸던 대구에 3년 전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 들어섰다. 쇠락해가는 섬유·패션산업을 되살리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채용·입찰 비리 의혹, 부적절한 원장 선임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대구의 침체된 섬유·패션산업을 되살리자며 2010년 4월 대구 동구 봉무동에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 현판을 내걸었다. 세금 110억원을 들여 새 건물을 지었고, 한 해 100억원 넘는 세금을 지원한다. 그런데 3년을 넘긴 요즘, 채용·입찰 부정 의혹에 원장 선임 파동까지 ‘비리 연구원’이란 따가운 시선 속에 놓였다.

“연구원은 공익적 기능을 상실하고 예산 낭비, 나눠먹기식 운영의 복마전이 되고 있다.” 지난 4월7일 대구참여연대가 성명에서 내린 결론이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은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기관일까?

■ 뭐하러 설립했나? 대구지역 섬유산업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60년대에 기지개를 펴 70~80년대에 최대 호황을 누렸다. 1980년엔 대구 제조업체 3151곳 가운데 섬유업체가 절반 가까운 1439곳(45.7%)이나 됐다. 하지만 90년대에 접어들어선 점점 위축됐고, 2005년엔 제조업체 가운데 섬유업체는 28.4%로 줄었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설립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거액의 예산을 투입한 명분은 ‘지역 섬유·패션산업의 활성화’였다. 산업기술혁신촉진법을 바탕으로, 2545㎡ 터에 지상 4층 지하 1층 건물을 신축하는 115억원 가운데 110억원(지식경제부 60억원, 대구시 40억원, 경북도 10억원)을 들였다.

행사 기간 열린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무대 위를 걷고 있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제공
행사 기간 열린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무대 위를 걷고 있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제공

‘사양길’ 패션산업 살리려 3년전 설립
자생력 없어 사실상 공공기관 해당
운영은 패션업계 마음대로 ‘주물럭’
돈줄 대는 산자부·대구·경북 ‘뒷짐’

직원은 60명이 넘는다. 지난해 예산은 운영비 57억원, 사업비 89억원 등 146억원이었다. 연구원 스스로 조달한 일부 운영비 28억원, 기술지원 수익 4억여원을 뺀 나머지는 대부분 세금으로 지원됐다. 운영비 18억원(지식경제부 7억여원, 대구시 8억여원, 경북도 3억원)을 직접 지원받고 사업비 89억원도 대부분 정부와 자치단체로부터 따낸 수탁사업이었다.

민간 전문생산기술연구소는 전국에 14곳 있다. 이 가운데 7곳은 자생력이 낮아 정부나 자치단체의 보조금을 받는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해마다 지원사업 평가를 하는데, 7곳 가운데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은 2011년과 올해 꼴찌였고 지난해에는 6위였다.

■ 비리 의혹투성이…원장 선임도 ‘황당’ 2011년 12월 한국패션산업연구원에서는 이상한 채용이 이뤄진다. 패션디자인 분야 계약직을 공개 채용하면서 ‘섬유·패션 관련 학과 학사 이상 졸업자’로 자격을 제한했다. 9명이 지원해 6명이 서류전형에 합격했다. 그런데 6명 가운데 경영학을 전공한 김아무개(29·여)씨가 포함됐다. 응시 자격이 안 되는 김씨가 면접심사까지 통과해 최종 합격자 2명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채용 과정에는 김창규(52) 연구원 기획경영본부장 등 4명이 참여했다. 기적처럼 합격한 김씨는 나중에 대구시 공무원(사무관)의 딸로 드러났고, 최근 이 문제가 불거지자 연구원을 나갔다.

2010년 5월에도 이상한 채용이 이뤄졌다. 연구원은 전문위원 자리를 새로 만들더니 5월17일 채용 공고를 냈다. 때마침 31일 명예퇴직한 경북도 공무원(사무관)이 지원해 계약직 전문위원에 뽑혔다. 명예퇴직 절차가 여러달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이 공무원에겐 시기적으로 딱 들어맞는 채용 공고를 연구원이 낸 셈이다. 이 공무원은 최근 계약 만료로 퇴사했다. 연구원과 대구시·경북도 공무원들이 유착돼 있다는 의혹이 이는 대목이다.

행사 기간 열린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무대 위를 걷고 있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제공
행사 기간 열린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무대 위를 걷고 있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제공

명퇴 공무원 채용 특혜 의혹에
징계대상자를 원장 자리 앉히기도
한달 넘게 경찰수사 미적대는 사이
연구원, 업체 불러 회계자료 파기

패션산업연구원은 출범 이후 지금까지 30차례 넘는 채용 공고를 냈다. 10차례는 공고 기간이 닷새 이하였다. 채용 공고가 난다는 점을 미리 알지 않으면 지원하기도 어렵게 한 것이다.

사업 입찰에서도 의혹이 잇따라 불거졌다. 2011년 7월 대구시로부터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캐주얼 유니폼 제작을 의뢰받아 공개입찰에 부쳤다. 그런데 응찰 서류를 단 한 시간 동안 접수했다. 결국 두 차례 유찰됐고 수의계약으로 넘어갔다. 계약은 김시영 이사장이 운영하는 스포츠의류 제조업체가 따냈다. 이 업체가 제시한 금액은 1억3800만원이었는데, 낙찰 금액은 1억3000만원이었다. 통상 수의계약에선 제안 금액의 60~70% 선에서 낙찰금액이 결정된다. 김 이사장은 “실무를 하지 않는다. 우리 업체가 선정된 것은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그 무렵 연구원은 ㄴ업체, ㅈ업체와도 수의계약을 맺었는데, 제안 금액과 낙찰 금액이 거의 비슷했다.

연구원은 2010년 중반 이후 2년 동안 장비 구매 등 모두 60여차례 입찰 공고를 냈는데, 수의계약으로 넘어간 비율이 40% 정도나 된다. 법정 입찰공고 기간(1차 7일, 2차 5일)을 지키지 않은 입찰도 많았다. 연구원과 섬유·패션업체 사이에도 유착관계가 형성돼 있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비리 의혹들에 휘말려 있던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은 지난 3월15일 2대 원장에 김창규 기획경영본부장을 선임해 지역사회에 충격을 줬다. 그 나흘 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2011년 12월 부당 채용과 관련해 징계를 요구한 인사를 원장 내정자로 앉힌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3월20~22일 연구원에 조사관을 보내 입찰 등 비리 혐의를 조사하고, 지역 시민사회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김 원장 내정자는 며칠 뒤 갑자기 사퇴했다.

연구원은 원장 재공모를 거쳐 5월14일 섬유·패션산업과 인연이 거의 없는 김충환 전 대구시의회 부의장을 2대 원장에 선임했다. 경찰 수사를 앞두고 새누리당 부대변인을 지낸 정치인을 영입한 의도를 두고 또 뒷말이 무성하다. 우정구 초대 원장은 지역 일간 <매일신문> 편집국장 출신이었다.

대구 동구 봉무동에 있는 한국패션산업연구원 건물.
대구 동구 봉무동에 있는 한국패션산업연구원 건물.
■ 견제 사각지대…미적대는 경찰 패션산업연구원은 형식만 민간 연구소일 뿐 공공기관에 가깝다. 자생력이 거의 없어 세금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섬유·패션업체 대표들이 대부분인 이사회가 전권을 쥐고서 연구원 운영을 좌우한다. 업체 대표들이 이사 18명 가운데 13명이고 감사도 업체 대표다. 정부·대구시·경북도 공무원 1명씩이 당연직 이사다. 세금을 지원하는 정부와 대구시, 경북도는 정관 개정 등에만 개입하고 나머지는 자율로 맡겨두고 있다.

외부 견제나 감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정부의 묵인 속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섬유·패션업체-연구원-대구시·경북도’로 연결된 커넥션 구조다. 설립 이후 연구원은 지식경제부와 대구시로부터 한차례씩만 감사를 받았을 뿐이다. 이마저도 언론 등이 의혹을 제기한 뒤 떠밀리다시피 벌인 부분 감사였다. 대구시가 지난해 5월 벌인 감사에서 21건이 적발됐다. ‘봐주기 감사’라는 논란 속에서도 채용, 회계, 계약, 입찰, 예산 집행, 업무추진비 사용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문제점이 지적됐다.

연구원 쪽의 대담무쌍한 행태는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지난달 14일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엿새 뒤 문서 파쇄 전문 업체를 불러 회계자료 등을 무더기 파기했다. 그런데도 대구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1일까지도 연구원 압수수색조차 하지 않았다. 경찰이 미적대며 수사 속도를 내지 않자, 시민단체는 ‘경찰이 외압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조광현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비리 의혹이 일찍부터 제기돼왔다. 국민권익위원회도 이미 지난 3월 입찰 비리를 조사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로 외압설을 불식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글·사진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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