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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지뢰밭 목숨 걸고 일궜더니 땅주인들 나타나 쫓겨날 판”

등록 2013-07-24 20:37수정 2013-07-24 22:38

70년대부터 ‘전략촌’ 토지소송
입주민, 원소유주에 잇단 패소
“정부가 나서 특별법 제정해야”
“정부 시책에 따라 목숨 걸고 땅을 일궜어요. 그런데 오히려 쫓겨날 판입니다. 이제라도 전략촌 주민을 보호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죽기 전 소원입니다.”

6·25 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백마고지가 지척인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개척비 앞에서 지난 10일 만난 신성순(78)씨는 간절했다.

북녘 땅을 바라보며 자리한 대마리는 애초 집터가 아니었다. 1967년 4월10일 30대 청년 150명이 집단 이주해 마을로 일군 곳이다. 북쪽에 자유로운 남쪽을 홍보하려고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안에다 조성한 전략촌이다.

당시 32살이었던 신씨는 1인당 땅 2만㎡(6000평)를 준다는 정부의 약속에 고향 충남 아산을 떠나왔다. 낮엔 지뢰투성이 땅을 일구고, 밤에 보초를 서면서 군용 천막에서 잤다. 1년 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11평짜리 집을 지어줘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려왔다.

황무지를 개간하는 고단한 이들의 목숨을 지뢰가 위협했다. 지뢰탐지기로 훑었어도 초기 3년 새 18명이 지뢰 사고를 당했고 절반이 숨졌다고 신씨는 기억했다. ‘죽어도 항의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 탓에 가슴만 쳤다. “고향에 연락도 못했어요. 우리끼리 주검을 수습해 막걸리로 밤을 새우고 다음날 장례를 치렀지요. 정부에선 쓴 막걸리 한잔 내놓지 않았습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어쩔 수 없었다지만, 지금도 숨진 동료들의 가족과 평생 장애를 안고 지내는 이웃을 보면 한이 사무칩니다.”

논밭 모양을 갖추자 토지 소유권 분쟁이 시작됐다. ‘개간하면 땅을 주겠다’는 정부의 말을 믿었지만, 정부가 분양해준 땅의 주인이 따로 있었다. 황무지였던 땅에 관심을 두지 않던 토지 소유주들은 70년대 초부터 소송을 걸었고, 대법원까지 갔지만 입주민들은 줄줄이 패소했다. 삶의 터전을 포기할 수도 없어 임대료를 지급하는 소작농 신세로 전락했다. 70년대 중반부터 정부가 분쟁 토지를 일괄 매입한 뒤 주민들에게 되팔면 주민들이 20년간 나눠 갚는 방안을 담은 청원을 냈지만 지금까지도 무소식이다.

춘천에서 차량으로 2시간쯤 북서쪽으로 달리면 만나는 대마리는 1996년 3월 민통선에서 해제됐다. 하지만 전략촌의 ‘그늘’은 대물림되며 짙게 드리우고 있다. 전략촌 2세대인 김정일(42)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살던 집이 낡아서 새로 지으려 해도, 한 지붕 아래 두 가구가 살던 집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런 집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전략촌 2세대인 김동일(51) 강원도의원은 “지뢰 피해를 겪은 어르신들을 보살피고 토지 분쟁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고충을 풀어야 한다. 정부가 특별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대마1리 이근용(57) 이장은 “의약품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정부 말만 믿고서 지뢰밭이던 이 땅을 일궜다. 토지 분쟁이 벌어진 지 한참이지만 정부는 방관만 한 채 반세기가 흘렀다”고 아쉬워했다.

올해 8월30일에도 입주 기념식이 예정돼 있다. 45년 전인 1968년 이날엔 내무부·국방부·농림부 장관까지 참석했다고 한다. “장관들도 누구도 관심을 끊은 지 오래됐어요. 입주민 150명 대부분이 숨져 지금은 30명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이들 모두 죽으면 돌아볼지 모르겠습니다.” 신성순씨가 착잡하게 한탄했다.

철원/글·사진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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