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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층서 쿵쿵쿵…짜증내기 전에 ‘이웃 사랑해’ 외쳐봐요

등록 2013-09-15 19:27수정 2013-09-16 14:49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 아이들 뛰는 소리 등 층간소음으로 빚어지는 갈등을 주민들이 공동체를 일궈가면서 완화해보려는 실험들이 차츰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에 고층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모습.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 아이들 뛰는 소리 등 층간소음으로 빚어지는 갈등을 주민들이 공동체를 일궈가면서 완화해보려는 실험들이 차츰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에 고층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모습.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현장 쏙] ‘우리 동네 공동체’ 바람 분다 ④ 층간소음 해법을 찾아

올해 2월9일 설 연휴 첫날 서울 중랑구 면목동 아파트에서 일어난 ‘층간소음 살인 사건’은 명절을 보내던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후 7개월 동안 이웃간 층간소음 다툼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논의와 정부 대책이 나왔다. 하지만 대다수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층간소음 불편을 항의하는 주민들 앞에서 쩔쩔매기 일쑤다.

서울 은평구 아파트 주민들
자발적으로 조정위원회 꾸려
갈등 예방법 만들고 역할극도

이웃사이센터 상담 한달 998건
‘아이 발걸음 소리’ 소음 큰 원인
“공동체 복원, 층간소음 갈등 해법”
주민 자율기구 지원도 절실한 상황

■ ‘공동체 복원이 실마리 될까’
11일 서울 은평구 은평뉴타운 제각말5단지 푸르지오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만난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해 ‘이웃사랑해’를 꾸렸다”고 입을 모았다. ‘이웃사랑해’는 이곳 아파트 주민자율조정위원회의 이름이다. 딱딱한 명칭을 버리고 새로 지었다. 아파트단지 안 북카페 등에서 봉사하는 ‘동락회’ 회원인 주민들이 대거 주민조정위원으로 참여했다고 했다.

“등 떠밀려 시작한 게 아니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다 보니 조정위원들이 의욕이 넘치죠. 이웃을 만나야,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 수 있잖아요.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 큰 문제도 쉽게 풀 수 있지 않을까요?” 유금자(50)씨가 또렷하게 말했다.

북한산 가까이 있는 이 아파트는 2010년 9월 지어져 330가구가 입주했다. 3년 동안 겉으로 불거진 심각한 층간소음 갈등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5월 주민 설문조사 결과는 다소 뜻밖이었다. 대다수 주민들이 ‘층간소음을 겪어봤다’고 응답했고, 대처 방법으론 ‘그냥 삭인다’는 응답이 많았던 것이다.

서울와이엠시에이(YMCA) 이웃분쟁조정센터가 무료 컨설팅에 나섰다. 갈등조정 전문가, 지역 커뮤니티 플래너, 마을 공동체 전문가 등이 주민조정위원 교육을 맡았다. 지난 7월 네 차례 교육은 분쟁 해결과 갈등 예방을 위한 역량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주민조정위원들의 직업은 다양하지만 층간소음이 어떤 과정을 통해 격화하는지, 어떻게 하면 갈등이 극단적 형태로 분출되는 걸 막을 수 있는지를 놓고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두 차례 역할극을 해보며 갈등 사례를 풀어가는 실습도 했다. 서울시와 은평구는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지원하면서 힘을 보탰다.

그러고는 주민 협약인 ‘층간소음 예방 생활수칙’을 만들었다. 물론 토론을 거쳤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공지하는 대신 가구별로 차근차근 동의를 받아갈 참이다. “아무리 좋은 주민 협약이라도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있으나 마나잖아요? 공동주택에서 층간소음은 피할 수 없겠지만, 생활공동체를 만들어가면 부드럽게 풀어갈 수 있겠죠.” 배은경(45)씨의 설명이다.

이들은 다음달, ‘이웃사랑해’라는 현판도 만들어 내걸 참이다.

주건일 서울와이엠시에이 팀장은 “층간소음이 극심한 갈등으로 비화하는 까닭은 아파트 공동체가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아파트 공동체를 복원하는 노력을 병행하지 않으면 층간소음은 언제라도 사회문제로 폭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분쟁 조정기구만 구성한다고 해서 이웃간 분쟁이 다 해소되진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작은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경험을 쌓아가면, 다른 분쟁도 자연스럽게 조정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서울시와 주거문화개선연구소 쪽의 설명을 종합하면, 서울 은평뉴타운 제각말5단지 아파트 말고도 전국 20여곳 아파트에 층간소음을 관리하는 주민위원회가 구성돼 있다. 구로구 온수힐스테이트에서 작은도서관 ‘아름’을 운영하는 배대섭(42)씨는 “층간소음 같은 민원을 해결하기에는 관리사무소만으로 버거워 주민소통위원회 구성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수성구 지산동 녹원맨션아파트는 지난해 주민 협약을 만든 뒤로 층간소음 등에 대한 민원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 층간소음 갈등은 ‘진행형’
아파트·다가구주택 같은 전국 대다수 공동주택들에서 크고 작은 층간소음 갈등이 아직 진행형이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직원들이 12일 서울 송파구 한 다가구주택을 찾았다. 층간소음 피해에 시달린다는 민원을 접하고서다.

“위층 아이들이 쿵쿵 뛰는 소리에 귀마개를 하고 지내다시피 해요. 여러 차례 찾아가 아이들에게 매트라도 깔아주라고 권유도 해봤어요. 그만 올라오라는 외침만 돌아왔어요.” 3층 집에서 취업을 준비중이라는 ㄱ(28)씨는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제는 찾아가도 문도 열어주지 않는 위층을 보면서 벽에 부닥친 심경이라고 했다. 이웃사이센터 직원들이 위층에 찾아갔다. 하지만 위층 아이들 엄마는 ‘밖에 나가야 한다’며 상담을 미뤘다.

이웃사이센터 자료를 보면, 지난해 3월~올해 7월 전화 상담 신청만 1만5974건이 걸려왔다. 평균 잡아 한 달 998건, 하루 46건에 이른다. 층간소음 원인으론 아이들이 쿵쿵거리며 뛰노는 소리나 어른 발걸음 소리가 73.4%로 가장 많았다. 망치질(4.3%), 가구 끄는 행위(2.3%), 피아노 등 악기 연주(2.2%), 청소기·세탁기 등 가전제품 작동(2%), 말다툼(1.7%), 화장실 물 내리거나 샤워하기(1.5%) 차례였다. 이웃사이센터는 주거문화개선연구소와 함께 서울·경기·인천 수도권의 공동주택 주민들의 신청을 받아 현장 점검을 하루 10건 가까이 한다. 이르면 다음달부터 부산·대구·대전·광주·울산 등 5개 광역시에서 현장 점검에 나설 예정이다.

지난 7월 소음·진동관리법 개정으로 법률 규제 대상에 공동주택 생활소음도 포함됨에 따라, 환경부와 국토교통부는 층간소음 규제 기준 등 제도를 손질할 예정이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층간소음 피해 인정 범위를 ‘5분 평균 소음도 55㏈(주간), 45㏈(야간) 초과’에서 ‘1분 평균 소음도 40㏈, 35㏈ 초과’로 좀더 엄격히 바꿨다. 국토교통부는 신축 공동주택의 바닥재 두께와 충격음 기준을 동시에 충족하도록 대통령령을 바꿨다.

하지만 이런 정부 대책으로는 곳곳에서 격렬해지는 층간소음 갈등에 대처하기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환경부 산하 이웃사이센터의 현장 인력도 고작 10여명뿐이다.

서울 은평뉴타운 제각말5단지 아파트의 주민조정위원들이 층간소음 갈등을 풀어낼 아이디어를 저마다 종이에 적어 붙인 ‘이웃사랑 소망나무’ 앞에서 나란히 섰다.  은평뉴타운 제각말5단지 아파트 제공
서울 은평뉴타운 제각말5단지 아파트의 주민조정위원들이 층간소음 갈등을 풀어낼 아이디어를 저마다 종이에 적어 붙인 ‘이웃사랑 소망나무’ 앞에서 나란히 섰다. 은평뉴타운 제각말5단지 아파트 제공

층간소음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면 건물 시공 단계에서부터 아파트 등의 층간구조물 두께를 늘리고 차음재 성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건설업계도, 정부도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할 뿐, 아직까지 뚜렷한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나 업계의 대처가 더딘 가운데, 얼굴을 맞닥뜨려야 하는 이웃 사이인 주민들이 층간소음 갈등을 완화할 해법은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역지사지의 제도화’를 해법으로 꼽았다. 이런 제도화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급하게, 또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 소장은 “아파트니까 참고 살라고 말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주민들이 층간소음 관리위원회를 꾸려 풀어낼 수 있게 누군가는 지원해야 한다. 정부가 이런 시스템이라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수정 서울시 갈등조정담당관은 “층간소음 갈등을 스스로 풀어내는 주민 자율기구가 안착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시민들이 스스로 갈등을 풀어낸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아이디어 공모전도 떠올려볼 만하다”고 말했다.

8년 전부터 갈등조정 교육에 힘써온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의 김선혜 갈등해결센터 소장은 “법으로 갈등을 풀려고 하면 또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주민들 사이의 갈등을 원만히 풀어내려면 당사자의 자율성, 중립성, 비공개라는 세 가지 원칙을 꼭 지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한 뒤부터는 이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이웃 사이에 벌어지는 층간소음 갈등에 법적 대응으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얘기다.

정태우 기자 windage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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