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돌봄센터에서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가 마련한 인문치료에 참가한 이들이 동화를 함께 읽은 뒤 저마다 느낀 바를 표현한 그림을 서로에게 내보이고 있다. 정선군 제공
[충청·강원 쏙]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인문치료 7년’
실업, 장애, 우울증, 중독 등으로
사회생활 어려움 겪는 사람 찾아
7년 왕진 다니며 마음치료 도와
세상에 분노 쏟아내던 참가자들
책 읽고 말하며 억눌림 풀어주자
자기조절·대인관계 훨씬 좋아져
실업, 장애, 우울증, 중독 등으로
사회생활 어려움 겪는 사람 찾아
7년 왕진 다니며 마음치료 도와
세상에 분노 쏟아내던 참가자들
책 읽고 말하며 억눌림 풀어주자
자기조절·대인관계 훨씬 좋아져
문학·역사·철학·영화 등 인문학으로 ‘마음의 병’을 치유한다?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가 2007년부터 정서 불안정이나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벌여온 ‘인문치료’라는 실험이다. 과연 그 효과는 어떨까?
지난 2일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돌봄센터 ‘희망교실’에서 20~50대 10명이 일본 동화작가 야시마 다로의 <까마귀 소년>이라는 동화 구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왕따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동화다.
참가자들은 느낀 바를 그림으로 표현한 뒤 서로의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삐뚤빼뚤 자신만 알 듯한 그림과 글을 내놓기가 쑥스러운 듯 멈칫멈칫하더니 누군가 말꼬를 트자 봇물처럼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한 참가자는 “까마귀 소년이 느꼈을 외로움이 와 닿았다. 힘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다른 참가자는 “까마귀 소년이 힘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심각한 문제를 고민한 어른이라기보다 해답을 알아내 기뻐하는 아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가 벌이는 ‘인문치료’의 현장이다. 수강생들은 실업, 장애, 알코올중독, 우울증 등을 겪는 이들로 정선지역자활센터의 자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날 프로그램을 맡은 정선미 교수(국어학)는 “소년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외로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린 동화다. 함께 읽고 느낀 점을 말하는 동안 간접적으로 위로를 받게 된다. 작품 속 인물에 자신을 투영하며 아픈 마음을 다스려 가는 것이 바로 인문치료”라고 말했다.
치료는 의사의 몫이지만 현대 의학이 다 풀지 못하는 ‘마음의 병’이 늘고 있다고 진단하는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는 2007년부터 인문치료라는 이름으로 현대인의 마음병 치유에 나서고 있다. 여기서 의사는 물론 인문학자들이다. 철학·어학·영화·문학 등 인문학이 지닌 감성을 치료제로 삼는 것이다. 관념적이라며 뒷방으로 몰린 ‘문사철’(문학·역사·철학)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실용성 있는 현장으로 끄집어낸 것이다.
요즘 강원도 춘천시 신촌정보통신학교(옛 춘천소년원)는 ‘인문학 보건소’다. 지난달부터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의 인문치료 강좌가 열리고 있다. 반응이 뜨겁다. 교무과 직원 송봉석씨는 “6차례 강의 가운데 2번 했는데 예상외로 학생들이 흥미를 보이고 집중한다. 올해 처음으로 해봤는데 앞으로 지속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아무개(17)군은 “학교와는 수업 방식이나 내용이 많이 다르고 재밌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고 말했다.
강의는 다소 이색적이다. ‘장자에게서 배우는 의사소통 이야기’ ‘영화와 함께하는 분노로부터의 해방’ ‘스토리텔링과 삶의 행복’ 등이 주제다. 이영의 교수(철학)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도록 하는 데 힘쓴다. 예컨대 <장자>를 함께 읽고 대화하고 글을 써보며 비뚤어지게 바라봤던 관점을 바꾸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락길 교수(영화학)는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단편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자신의 억눌린 마음을 표현하고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 바로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한달 동안 강원 지역 자활 대상자 15명을 대상으로 인문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했더니 참가자들의 자기조절 능력과 대인관계 능력이 꽤 나아졌다고 인문과학연구소는 밝혔다. 감정조절 능력, 충동 통제력, 소통 능력, 공감 능력 등의 항목을 측정한 결과다. 심리학 기법인데 인문치료 효과 분석에 활용했다.
자기조절 능력 점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전 평균 59.9점이었는데 인문치료 뒤에는 64점으로 올랐다. 어른 평균치인 63.5점을 웃돈 것이다. 대인관계 능력 점수도 평균 58.6점에서 65.6점으로 높아진 것으로 측정됐다. 정선미 교수는 “이 결과를 100% 인문치료의 효과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인문치료에 참가하면서 분노 등을 조절하고 남과 소통하는 능력이 크게 좋아진 것만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낸 소감문에도 인문치료의 효과가 나타났다. 실업 문제로 힘들어하던 참가자는 “고통,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렵다고 느끼는 지금 이 순간이 우리 인생의 한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적었다.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참가자는 “감정의 교감 속에 마음 깊은 곳 울분까지 토해내며 조금은 짐을 벗고 다시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정정호 정선지역자활센터 사회복지사는 “참가자 대부분이 내면에 상처를 안고 있는 위로가 필요한 이들이다. 조금 공격적이다. 인문치료 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점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가 진행한 인문치료는 지금까지 94차례에 이른다. 군부대 부적응 장병들, 미혼모 쉼터, 재활병원, 새터민 쉼터, 교도소, 자활센터, 소년원 등 소외층이 있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인문치료 전문가 양성에도 눈길을 돌리고 있다. 김익진 교수(프랑스문학)는 “프랑스에는 이미 40여년 전부터 예술치료가 활성화돼 의대 안에 자리잡고 있다. 정신과가 의과대학 안에 생긴 것처럼 임상 경험과 학문적 연구를 통해 인문치료학과 설립도 추진할 만하다”고 말했다.
김남연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장은 “재활 대상자나 소년원생들도 개인적 사유보다는 학교 문제, 경제적 문제라는 맥락에서 접근해야 할 경우가 많다. 소통 부재로 빚어지는 소외, 사회 부적응에도 인문치료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춘천/박수혁 기자 psh@hani.co.kr
“세계 최초 시도인 인문치료
인문학 위기서 새 길 찾을 것” 김남연 인문과학연구소장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에 김남연(56·프랑스문학·사진)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장은 지난 3일 “인문학이 현실에 연결될 수 있는 접점을 찾아 변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인문치료’가 인문학의 위상을 재정립할 하나의 모델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인문치료는 2007년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탄생했다. 연구소는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이 ‘인문학 진흥을 위한 인문한국(HK) 사업’을 벌일 때 인문치료를 제안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까지 전국 규모의 학술대회 18차례, 국제 학술대회 5차례를 치르면서 인문치료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김 소장은 평가했다.
2009년 9월에는 한국인문치료학회가 결성됐다. 관련 연구 논문 200여편이 나왔고 <인문치료와 문학, 그리고 언어> <인문학의 치유 역사> 등 책도 12권이 발간됐다.
인문치료는 미술·음악치료나 심리치료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게 김 소장의 말이다. “인문치료는 인문학적 가치와 방법을 통해 현대인의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행위입니다. 미술·음악치료와는 도구가 다릅니다. 인문치료는 문학, 역사, 철학이 주된 도구예요. 생각하고(철학) 표현하며(문학) 기억하는(역사) 과정을 통해 정서적 고통을 덜어주려는 치료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소는 인문학이 전통적으로 활용해온 읽기·쓰기·말하기 말고도 미술·음악·영화·연극 등을 결합해 치유 효과를 극대화하려 한다고 김 소장은 소개했다. 그는 “심리치료와도 다르다. 심리치료의 대상이 심리라면 인문치료의 대상은 사람 그 자체다. 심리는 사람이 지닌 요소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인문학은 재미있는 학문입니다. 재미는 배움이 현실과 연결될 때 발견되는 것이지요. 인문치료는 세계 최초로 시도하는 도전입니다. 이 도전이 성공하면 인문학도 위기론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춘천/박수혁 기자 psh@hani.co.kr
“세계 최초 시도인 인문치료
인문학 위기서 새 길 찾을 것” 김남연 인문과학연구소장
김남연(56·프랑스문학)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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