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생활
땅을 파면 물이 나온다.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땅밑 물길을 건드려야 한다. 지하철을 건설하다 보면 물이 솟을 때가 있다. 선로와 수맥이 만나서 그렇다. 그때 물을 계속 퍼올리지 않으면 수압 때문에 지하설비구조가 버티지 못한다.
지하철 지하수 8백t 활용 430평 ‘휴식’ 이 흐른다
1~8호선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메트로시티 서울에선 지하철 지하수가 매일 15만여t씩 나온다. 오는 10월 복원공사가 끝나는 청계천 5.4km에 수심 30㎝를 유지하는데 하루 12만t이 필요하다고 하니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지하수의 양을 가늠할 수 있다.
지하철 지하수는 우선 지하철 역사의 청소용수·화장실용수 등으로 활용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강으로 흘려보내거나 오수와 뒤섞여 하수처리장으로 가는 물이 많았다. 청계천을 비롯해 성북천·불광천 등 서울 곳곳에서 샛강이 복원되면서 지하철 침출수도 대부분 샛강으로 흘러간다. 지하철 침출수가 없었다면 1년 중 많은 기간을 건천으로 지낼 뻔한 샛강들이 덕분에 물줄기를 품고 물고기와 수초들을 길러낸다.
이밖에도 지하철 침출수는 먼지 가득한 도시에서 짧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지하철 3·6호선 환승역인 연신내역 ‘물빛공원’이 대표적이다. 연신내역과 바로 붙어있는 ‘물빛공원’은 430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숨가쁘게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렀다 가기에는 충분하다. 공원을 만들어 지하수를 이용한 게 아니고 처음부터 지하수를 이용할 요량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지하철에서 나오는 지하수 8백여t은 이 공원의 핏줄과도 같다.
물은 공원 전체를 관통하는 수로를 구불구불 흐르다 벽을 타고 아래로 쏟아져 내린다. 그런가하면 안개분수로 솟아오르기도 한다. 조선시대 변두리로 가는 통신·교통의 센터였던 구파발의 이미지를 살려 파발행렬도와 마패 등으로 장식한 가벽도 놓여 있다. 지하철 환기구 또한 알록달록한 기둥으로 장식돼 공원의 장식물로 자리잡았다.
은평구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은 상업지역에 위치한 물빛공원은 사람들의 모임이 끊이지 않는다. 구청에서 개최하는 정기음악회가 매달 첫째·셋째주 금요일 오후마다 열리고 선거철이면 후보자들이 앞다퉈 물빛공원을 찾는다. 근처에 넓은 공원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알뜰살뜰 사랑받는 공원은 흔치 않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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