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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중 ‘펑’ 밭매는데 ‘펑’…포탄 공포 40년, 더는 못 참아

등록 2013-12-29 17:37수정 2013-12-29 20:26

지난해 10월 강원도 양구군 동면 팔랑리 육군 포사격장 주변에서 주민이 불발탄을 발견하고 현장 확인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강원도 양구군 동면 팔랑리 육군 포사격장 주변에서 주민이 불발탄을 발견하고 현장 확인을 하고 있다.
포사격장 1㎞ 떨어진 마을로
파편 날아들어 주민들 공포감
5개월 동안 쇳덩이 9개 발견돼
불발탄 터져 주민 사망하기도
양구군 팔랑리 주민들 화났다

남북이 맞선 가운데 군 사격장·비행장 등 주변지역 국가안보 앞에서 숨죽여 지내왔다. 40년 동안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다녀도 참아왔던 강원도 양구군 동면 팔랑리 육군 포사격장 인근 주민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강원도 양구군 동면 팔랑리 육군 포사격장 근처에서 만난 마을 주민 이명준(59)씨는 작은 소리만 나도 자꾸만 하늘을 쳐다봤다. 지난해 4월13일 이후 생긴 버릇이라고 했다. “아침 7시25분께 밭에서 일하는데 뭔가 ‘쌩’ 하고 지나가더니 ‘퍽’ 하며 10m쯤 떨어진 밭에 박히더군요. 하마터면 죽을 뻔했죠. 지금도 식은땀이 납니다.”

주민들과 근처 육군 21사단 관계자, 경찰 등이 모여 이씨 밭을 30㎝쯤 팠더니 지름 10㎝, 두께 2㎝가량인 둥근 쇳덩이가 나왔다. 이씨와 주민들은 “팔랑리 포사격장에서 포탄 파편이 날아왔다”고 항의했지만, 군은 ‘사격 교범에 포탄 파편이 날아가는 최장거리(안전거리)는 600m다. 사격장에서 1㎞ 이상 떨어진 밭까지 날아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팔랑리에서는 지난해 4~8월 비슷한 쇳덩이가 9개나 발견됐다.

■ “40년간 12명이 죽었다” 포탄 파편이 속속 날아들자 주민들이 폭발했다. 군부대가 1974년 팔랑리 뒷산 62만6000㎡를 포탄 표적 장소로 지정한 뒤 피해가 잇따랐다. 마을은 사격장 경계에선 400여m, 표적지(사격지점)에선 1.5㎞ 남짓 떨어져 있다. 지난해 4월 나아무개(37)씨가 마을에 날아든 불발탄을 만지다 폭발 사고로 숨지는 등 지금까지 포탄 관련 사고로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준기 팔랑2리 이장은 “포사격장 때문에 사람이 죽고, 임신부가 유산하고, 사격 진동에 벽과 창문이 갈라지고 깨지는 등 40년간 피해가 너무나 컸다. 더는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양구군의회도 지난해 5월 ‘팔랑리 포사격장 피해 조사 및 대책 특별위원회’를 꾸렸다.

꿈쩍하지 않던 군이 움직였다. 21사단과 육군본부는 지난해 6·7·10월 세차례 155㎜ 포로 사거리 실험 사격을 했다. 그동안 주장해온 안전거리 600m의 2.5배인 1650m까지 파편이 날아간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21사단은 지난해 11월 주민설명회를 열어 “포사격장 표적지를 향한 155㎜ 포사격을 중단하고, 2016년까지 민가와 멀리 떨어진 새로운 표적지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 “사격장 피해 1조8000억원” 양구군의회와 주민들은 포사격장 이전보다 더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양구에는 팔랑리 사격장보다 6배 이상 큰 남면 죽리의 태풍사격장(4189만9000㎡·1972년 설치) 등 양구군 면적의 절반 이상인 366.8㎢가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다.

주민들과 군의회는 강원도 산하 강원발전연구원에 객관적인 피해 조사를 맡겼다. 강원발전연구원은 최근 낸 ‘양구 팔랑리 포사격장 등 주변지역 환경영향 분석 및 대책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40여년 팔랑리와 태풍 사격장으로 주민들이 정신적 피해(4984억원), 생산 손실(1조2373억원), 재산 피해(255억원) 등 모두 1조8026억원에 이르는 피해를 봤다고 설명했다.

군의회 피해조사 특위꾸려 활동
연구결과 40년 동안 주민피해액
소음피해 등 무려 1조8천억 추산
꿈쩍않던 군, 사격장 이전 약속
군 주변지역 지원법 목소리 나와

사격장 주변 9개 마을 450가구를 상대로 벌인 주민 의식조사에서 주민 79.1%는 수면 불안과 우울, 가슴 두근거림 등 정신적 피해를 보고 있다고 호소했다. 80.2%가 ‘재산 피해가 있다’고 답했는데, 건물 파손·훼손이 57.3%로 가장 많았고, 가축 등 농사 피해, 파편 피해 등 다양했다. 팔랑1리 주민 박아무개씨는 포사격 진동 때문에 기와가 내려앉아 지붕을 세차례나 교체했다.

태풍사격장 주변 죽리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올해 3~8월 학습권 피해 실태를 조사했더니, 교사 81.8%가 ‘수업을 중단해야 할 정도로 소음 피해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윤문식 교감은 “이 학교에 근무한 지 1년쯤 됐는데도 한달에 세차례쯤 포사격 때문에 아직도 놀란다. 폭발음이 크고 유리창도 흔들려 방음창 등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할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올해 5월 사격장 주변 소음도를 측정한 결과 최대 소음이 88.6㏈(데시벨)로, 환경정책기본법이 규정한 일반주거지역 주간 소음환경기준 55㏈과 가축 피해 인정기준인 60㏈을 넘어섰다. 포사격을 훈련하는 전차가 이동할 땐 최대 소음이 100.9㏈이나 됐고, 최대 진동 측정도는 74.1㏈이었다. 주민들은 재산 피해는 물론 정신적 스트레스 등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영한 강원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군 사격장에 대한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피해 조사는 전국에서 처음이다. 조사 결과를 정부와 국회에 법안 마련 정책 자료로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양구군 동면 팔랑리 마을과 인근 야산의 육군 포사격장 모습. 팔랑리 마을 너머로 40년 이어진 포 사격으로 맨살을 드러낸 포사격장이 보인다.
강원도 양구군 동면 팔랑리 마을과 인근 야산의 육군 포사격장 모습. 팔랑리 마을 너머로 40년 이어진 포 사격으로 맨살을 드러낸 포사격장이 보인다.

■ 군사시설 주변지역, 특별법으로 지원해야 현재 군사시설과 관련한 직접적인 재산 피해는 국가배상법으로 보상받을 수 있지만, 정신적 피해나 간접적 재산 피해는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을 들여 소송을 내는 길밖에 없다. 김철 양구군의원은 “접경지역 주민들은 머리 위로 수많은 포탄이 날아다녀도 참고서 지내왔다. 이제는 권리를 주장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군사시설 주변지역을 지원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번지고 있다. 댐, 발전소, 폐기물 처리시설, 상수원보호구역 등 공공시설 때문에 재산 피해 등을 본 지역 주민들에게 보상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처럼 말이다. 허훈 대진대 교수(행정학)는 “사격장·비행장 같은 군사시설을 설치해 국가안보를 지키려는 것은 국민 모두가 누리는 공공재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피해는 특정 지역에 한정돼 있다. 이런 지역 주민들을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산 확보 어려움 등을 고려해, 일단 시급한 사격장, 비행장, 대규모 탄약고 등 주변부터 지원하자는 의견도 있다. 강한구 한국국방연구원 박사는 “당장 모든 군사시설 주변을 지원하는 것은 재정 여건에 비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피해가 심각한 시설부터 특정 군사시설로 지정해 지원하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1974년 ‘방위시설 주변 생활환경 정비법’을 제정해 120곳에 2200억원(2012년 기준)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구군의회는 지난 23일 본회의에서 ‘비선호(특정) 군사시설 피해지역 지원에 관한 건의문’을 채택했다. 정부가 나서서 군사시설 주변지역 주민들을 지원할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창수 양구군의회 의장은 “오랜 기간 피해를 참아온 지역과 주민들에게 합리적으로 지원하고 보상할 토대를 갖춰야 할 때가 됐다. 국가안보로 얻는 편익과 손실을 함께 나누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구/박수혁 기자 psh@hani.co.kr 사진 양구군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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