旺山→王山 변경조례 8일 시행
고려 우왕 유배지
일제때 ‘일왕 왕’자로 바꿔
고려 우왕 유배지
일제때 ‘일왕 왕’자로 바꿔
일제가 강점기 시절 민족정기를 말살하려고 한자 표기를 바꾼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王山面)이 100년 만에 제 이름을 되찾았다.
강릉시는 왕산면의 한자 표기를 ‘왕산(旺山)’에서 ‘왕산(王山)’으로 바꾸는 것을 뼈대로 하는 ‘강릉시 왕산면 등의 한자명칭 변경에 관한 조례’가 8일부터 시행된다고 2일 밝혔다.
왕산면은 고려 32대 왕인 우왕이 1388년 이성계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곳으로, 이 인연으로 ‘왕산(王山)’으로 불렸다. 하지만 일제는 강점기인 1914년 조선총독부령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날 일(日)’을 붙여 ‘성할 왕(旺)’으로 한자 표기를 바꿨다. 당시 일제는 ‘창지개명’을 통해 지명에 쓰이던 왕(王)을 일본 왕을 뜻하는 ‘왕(旺)’이나 일본 천황을 뜻하는 ‘황(皇)’으로 바꿨다.
녹색연합이 2005년 2월 발표한 일제 때부터 왜곡된 채 사용되고 있는 백두대간 내 22개 땅 이름과 행정구역 조사에도 포함됐다. 2006년 8월에는 당시 행정자치부가 강릉시 왕산면 등 일부 지역의 한자 표기가 일제 때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왜곡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지역사회에서 왕산의 본래 한자 표기를 되찾아 일제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줄기차게 제기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지역 주민 1000여명이 ‘왕산의 본래 한자 표기를 되찾아 달라’며 서명운동을 벌여 강릉시에 제출하기도 했다.
결국 강릉시는 지난해 11월 왕산의 한자 표기를 바꾸기 위한 조례안을 만들어 입법 예고했고, 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가게 됐다. 강릉시는 연곡면 ‘신왕리(新旺里)’도 본래 한자 표기인 ‘신왕리(新王里)’로 바꾸기 위해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김준태 왕산면 이장협의회장은 “무려 100년 동안이나 일제 잔재가 남아 있는 한자 표기를 사용해 그동안 조상님들께 무척 죄송스러웠다. 늦게나마 제 이름을 되찾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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